취미생활과 나
( 김영남 '02.7.7.작성 '10.4.4.수정)

중학생 시절,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각 가정에는 승압트랜스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집 승압트랜스는 과전압 부져가 자주 울렸고, 그 때마다 전업사나 전파사에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분해해서 권선비를 세분화하여 탭을 설정하고 재권선하여 조립하고 다시 사용하는 재미를 나는 느끼고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나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공관 5구 슈퍼헤테로다인 방식의 라디오도 중학생 시절에 조립해 보았고, 더 나아가 영사기를 만들기 위해 밝은 광원을 얻기 위한 카본 아크방전시험을 아무 방호조치 없이 계속하는 바람에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는 신세가 되었다.

1967년 3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방송반 활동을 하는 바람에  아침 일찍 등교하여 행진곡 등을 틀어 주고 점심시간에는 교향곡이나 실내악곡 등을 틀어 주면서 고전음악을 즐겨 듣게 되었다.  

1970년 3월 대학에 진학하여 전기공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방송국의 앰프가 고장났다는데 누구 고칠줄 아는 학생 하고 물으시는 당시 학과장이셨던 최방진 교수님께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고 대학본부 1층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방송국 스튜디오에 가보니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주조종콘솔(믹서)박스 밑에 처음 보는 오랜지불빛의 100TH라는 대형진공관(송신관)과 보라빛 방전불빛을 내는 3B28이라는 역시 처음 접하는 대형정류관 그리고 드라이브관으로 6L6 빔관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하였다. 대학 영선계에서 테스터를 비롯한 공구를 빌려 점검하면서 회로를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드라이브관의 교체로 처음 수리는 쉽게 끝이 났다. 나는 당시 한국유네스코학생회(KUSA)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면 고칠 사람이 없다'는 영선계의 권유로 학교방송국의 기술부장으로서 또 다른 서클활동을 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로 6V6 싱글 스테레오 장전축을 만들어 당시 유행하였던 전축 계모임에 공급하여 학비를 조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3B28 정류관의 필라멘트가 자주 나가 말썽을 피웠고 이 정류관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 않아 쉽게 구할 수도 없어 며칠씩 방송을 중단하는 어려움을 격기도 했었다. 그 때마다 광주 공군비행장의 통신대에서 에밋션이 저하되어(수명이 다되어) 폐기처분하는 것을 얻어다 쓸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1990년대 말, 일본 주재원시절,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보랏빛 방전 불빛이 아름다운 3B28과 옛날 호야불과 같이 생겼고 전원을 넣으면 플레이트가 빨갛게 달아올라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송신관 100TH를 발견하고  학창시절의 감회에 젖기도 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3B28을 사용하여 정류부분만 별도로 만들어 기존의 정류관을 빼내고 정류관 소켓에 소켓접속으로 연결하여  아름다운 불빛을 감상하는, 물론 대전류의 정류가 가능하여 전압드롭이 적고 안정적인 전원공급이 가능하여 음질개선의 효과도 있는,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다.

군대에서도 통신병과의 장거리 통신병으로 있으면서 진공관 통신장비를 수 없이 접할 수 있었고 특히 BC-610이라는 송신기에서 100TH나 3B28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100TH를 사용한 싱글 스테레오를 만들어 가끔 대학시절과 군대시절을 회상하며 현악을 즐기고 있는데 이것 또한 별미이다.

11978년 1월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하였고, 1979년 독일로 연수를 갔었는데 우연히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길거리에서 팔공산에서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G I (미군)를 만났다.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 것도 그때 느꼈다. 그 미군은 나토방위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국을 무척 좋아했었고 나도 그 미군과 그곳에서 자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그 친구가 귀국선물로 미군 PX에서 사준 것이 파이오니아의 120왓트급 트랜지스터 리시버 앰프였다. 포항에 있으면서 그 앰프로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러던 중 1985년 2월 광양제철소로 전근명령이 났고, 우연한 기회에 고향집에 보관중이던 대학시절 사용하고 남은 부품상자(집사람은 고물상자라 함)를 광양으로 가져와 제니스 진공관 7695를 사용해 2왓트급의 아주 간단한 싱글 스테레오 앰프를 만들어 보았다.

이것을 당시 120왓트의 위용을 자랑하던 파이오니아 트랜지스터 앰프를 때어내고 장난삼아 물려보았는데,  하루 종일 들어도 피곤하지 않은 따뜻하고 단정한 소리를 내주었다. 이것이 내가 다시 진공관으로 돌아오게 된 배경이다.

나는 주로 직열 3극관인 RCA 2A3이나 WE300B를 사용하여 내 귀(취향)에 맞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회로설계를 반복하고 전압도 조정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부품도 교환해 가며, 현악기라면 손가락의 현터치, 현의 질감이나 배음 그리고 현에서 송진가루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의 자연스러운 음색과 음질, 밸런스와 스케일감, 공간감과 현장감 등등 각 악기의 소리가 깔끔하고 명쾌하게 표현되고 악기의 배열, 연주자의 발놀림 등 입체적인 울림과 열기까지 표현해 주어 실제로 라이브홀에서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소리를 내줄 때까지 앰프와 씨름했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진공관 앰프들은, 건전한 여가생활로 생활의 활력소를 되찾아 풍요롭고 보람된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즐거운 음악생활로 단란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결성한 광양제철소 고전음악동호인회 모임에 들고 나가 평가받고 여러 회원과 그 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으며, 때로는 성미급한 동호인들이 우리집에 예고없이 처 들어와 음악을 들으면서 '좋다' 소리를 연발하고 애견도 아닌데 분양해 달라고 생때를 쓰며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아무튼 진공관오디오 자작 덕택에 남들처럼 오디오 시스템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바꿈질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내 귀에 맞는 소리를 즐기고 있다.

 

 


1997년 7월 도쿄연구소로 전근명령이 나자 나와 가까이 지내는 주변의 오디오매니아들이 일본 아키하바라에 가면 이곳보다 좋은 부품을 훨씬 쉽게 구할 수 있을 터이니 우리들에게 좋은 일이나 하고 가라는 속삭임에 모두 처분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자작하여 듣고 있던 2A3 싱글과 마란츠 7회로의 프리앰프는 서울치과의 조원장에게, 2A3 푸슈풀은 포스코건설의 이 상무에게, WE 벨마크의 300B를 사용한 싱글 모노블럭은 일본계 회사인 한국요코가와에 근무하는 최전무에게, 그리고 타무라트랜스를 사용한 WE-91형 300B 싱글스테레오는 방치과의 방원장에게, 그리고 J.A. 미첼의 GYRODEC 턴테이블, 오르토폰의 SME3010 톤암, WADIA 8과 15의 CD 트랜스포트와 DA 컨버터는 감리회사인 POSCO-AC의 김상무에게, 스피커 탄노이 GRF 메모리는 포스코연구소의 윤박사에게, 보작 P4000은 방치과의 방원장에게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의 번화가인 긴자에 있는 포스코 도쿄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눈코 뜰새없는 바쁜 생활을 하였고, 본국이 IMF의 관리하에 들어감에 따라 각 기업이 서둘러 감원과 경비삭감 등의 구조조정작업에 들어갔고, 그 첫 번째 타겟이 해외사무소였으며, 우리 회사도 예외없이 주재수당을 대폭 삭감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녀의 대학진학을 위한 괴외학습마져도 부담이 되었고, 가족과의 도쿄생활 그 자체가 힘들 정도였으니 오디오나 음악감상 따위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휴일이면 아키하바라에 들려 아이쇼핑, 즉 어느 가게에서 아떤 부품을 팔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하는 수준으로 만족해야 했다. 일본에 도착하면 바로 만들어 즐거운 음악생활을 계속하겠다고  한국에서 가지고간 CD 700여장은 내방 한쪽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오디오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행도 가지 않고 남들 다하는 골프도 자제해 가며 모은 용돈으로 트랜스와 샤시만 있는 중고킷트를 구입하여 6L6GC와 같은 특성이면서 저렴한 7581A 빔관을 사용하여 푸슈풀 앰프를 만들고,  내가 가끔 들렸던 째즈바에서 엣지가 손상되어 버리려 하는 JBL의 XPL160 스피커를 얻어다 엣지만을 구입하여 수리하였다. 재생한 스피커이긴 하지만 썩 괜찮은 소리를 내주었고, 귀국해서도 한때 현용기로서 사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의 일본에서의 오디오 생활은 시작되었다.

어렵사리 장만한 오디오시스템은 내가 살고 있던 도쿄 신쥬쿠 다카다노바바의  게이트원이라는 째즈바의 라이브 컨서트의 음이 기준이 되어 앰프는 조정되고 튜닝되었고 틈만 있으면 째즈CD를 걸어놓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물론 이것이 내가 영혼의 음악이라며 째즈를 즐겨 듣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째즈바 게이트원에 들렸더니 어제 저녁에 오디오가 고장이 나서 그것이 수리될 때까지 약 2주간 가게를 닫아야겠다고 보칼리스트인 주인 마리코여사가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리코여사에게 정중히 가게는 마음대로 닫는게 아니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 운영이 어려워 폐업신고를 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요. 그러나 재즈를 들으러 오시는 손님도 많고, 특히 지역의 커뮤니티로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한데 어떻게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있느냐, 말도 않된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약 1주일정도 출장을 가니까 우선 우리 집에 있는 내 오디오를 가져와 영업을 계속 하시라고 제안했고 혼쾌히 받아들여져 7581A 푸슈풀 앰프는 온쿄의 트랜지스터 앰프와 대체되어 영업을 계속하였다

출장에서 돌아와 일부러 일주일간은 게이트원에 들리지 않다가 고장난 온쿄 앰프의 수리가 끝났을 것으로 생각되는 날에 게이트원에 가 보았더니, 일본의 유명한 킹레코드사의 양악부 디렉터 모리카와씨가 들렀었고, 자신이 다녀본 음악감상실중 가장 리얼한 음악을 들려준다고 극구 칭찬하고 돌아 갔다는 얘기와 함께 저에게 모리카와씨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 뒤 모리카와씨는 자기가 기획 감독하여 제작한 견본품 CD를 나에게 보내 주는 친절을 배푸셨고, 그 CD를 내가 만든 오디오에 걸어 듣는 것을 좋아 하셨다. 

게이트원의 주인인 마리코여사와 나와 친분이 두터운 게이트원의 손님들도 그 앰프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하였다.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 한다. 한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면 귀라는 것은 간사해서 그보다 나쁜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란츠 7 회로의 진공관 프리앰프까지 만들어 주었고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마리코여사는 내가 게이트원에 놀러가면, 나를 모르는 새로운 손님에게는 우리 가게 오디오를 만들어 주신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리코여사는 내가 만든 오디오로 바꾼 뒤부터 고질적인 두통이 사라졌고, 피로를 모르며, 항상 밝은 표정, 밝은 마음으로 응대할 수 있어 손님이 늘었고, 손님들도 모두 게이트원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은근히 자랑하였다.


그때 받은 실비에 조금 보태어 평소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845싱글  앰프의 제작에 도전하였다. 트랜스포머가 커서 무게가 거의 40kg에 육박하는 중량급이었는데 소리는 기대에 못미쳤다. 약 1년여 동안 씨름을 하였는데 드라이브관12BH7A를 6BQ5로 바꾸어도 보았고 인터스테이지 트랜스포머도 대전류를 흘릴 수 있는 것으로 주문하여 바꾸어 보았다. 많이 개선은 되었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우연히 진공관 세일을 하는 가게에 들렸는데 구 소련에서 만든 9핀의  6V6과 특성이 비슷한 6P1P라는 저렴한 진공관을 발견하고 구입하여 특성표를 참조해 가면서 조정한 결과 진가를 발휘해 흡족한 소리를 내 주었다. 845는 결국 전압드라이브가 아닌 충분히 전류를 흘려 전력드라이브를 걸어주어야 제소리를 내준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평소에 업무상의 관계로 친하게 지내오던 일본 요코가와전기에 근무하는  이와사키 부장과 저녁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2차를 클럽(우리의 노래주점)으로 가자고 하기에, 웃으며 째즈나 들으러 가자고 권유하고, 게이트원에 가서 째즈를 들으면서 어떠냐고 물었더니, 정말 듣기 편하고 리얼한 음을 들려 준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도 오디오매니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본래 취미일지라도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은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가 오디오매니아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러자 마리코여사가 사실은 이 오디오는 내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어려운 부탁이지만 자기한테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청을 해왔다.

그래서 그 다음주 일요일에 아키하바라에 그와 함께 가서 부품을 구입하여 틈틈이 배선하고 납땜하여 완성시킨 후 그의 집에 설치하러 갔었다.

그는 스피커를 자작하여 듣고 있었다. 나가오카 데츠오라는 유명한 스피커 시스템 설계 자작 매니아의 설계도를 이용해 만든 백로드 혼형 이었다. 그의 리스닝 룸과 스피커에 맞추어 그와 그의 가족들의 귀를 빌려 피드백을 조정해 가면서 튜닝을 끝내고 Sampler CD를 들어보았다. 정말 순발력과 여운을 고루 갖춘 음악성이 풍부한 좋은 소리를 내 주었다.

이 앰프의 주인이 된 이와사키씨와 엄청난 돈을 투입해 리스닝 룸을 만들고  수천만원어치의 고급 오디오제품을 설치하여 듣고 있는 같은 동네의 오디오매니아 사토씨도 매우 흡족해 하며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숨어 있는 음까지 리얼하게 들려준다고 칭찬을 하며, 구름이 걷히고 얇은 커튼마져 제켜진 맑은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이 주변에 소문이 나서 만들어 달라는 간청은 많았지만 바쁜 주재원생활로 인하여 더 이상은 만들어 줄 수가 없었다. 

오디오의 본고장 일본에 내가 만든 오디오가 한 대는 전문 음악감상실에서, 한 대는 오디오매니어의 리스닝룸에서 언제 들어도 피곤하지 않는 리얼한 소리를 내며 지금도 울리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틋 음악감상과 오디오자작 이라는 좋은 취미 때문에 해외에서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지역 주민들과 다양한 뮤지션과도 사귈 수 있었고, 우리나라와 우리회사를 소개하며,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여 즐거운 일본주재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01년 7월1일부로 귀국명령이 났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 주자 일본 최장의 황금연휴인 골든위크의 마지막 날에 지역주민 20여명이 째즈바 게이트원을 전세내어, 각 가정에서 준비한 요리 한가지씩을 가져 오고 째즈바에서도 주인 마리코여사와 종업원이자 마린바연주자인 마이짱이 정성을 다해 일본음식을 만들어 성대한 송별연을 마련해 주었다.



나도 서울 출장시 준비한 한국민예품을 그들에게 전달하여 줌으로써 각 가정에 장식하여 나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날은 마리코여사의 남편이자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하시모토 신지씨와 그의 친구들로 구성된 째즈연주그룹이 라이브연주를 해 주어 송별연은 한층 고조되었고 끝날무렵 모두 눈물을 흘리며 나를 전송해 주는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도 만들어 주었다.

 남들은 귀국할 때 일본제의 가전제품이나 가구, 주방기기, 그릇 등을 사러 다니느라 분주하였는데 나는 귀국하면서 노후의 취미생활을 위하여 진공관 몇 박스와 컨덴서, 저항, 트랜스포머 등의 진공관앰프를 만들 수 있는 부품들만 가지고 들어왔다.

부산 용당세관에서 세관원이 이삿짐들을 확인하면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퇴직한 후 노후생활을 즐겁게 할 꺼리를 준비한 것 뿐이야' 라고 말하고 야릇한 미소를 그에게 보냈다.

내가 나의 청춘과 정열을 바쳐 일해온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다시 복귀하여 거의 해체 위기에 까지 이른 고전음악동호회를 다시 부활시켜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건전한 여가문화를 정착시키고 신 바람나는 직장분위기를 형성해 보자는 취지로 형성된 회사내의 동호인 그룹이며 회사에서 마련해준 최첨단시설을 구비한 음악감상실에서 음악감상회가 있는 날이면 동호인 회원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인 순천, 여수, 남해 등지의 오디오매니어들이 동참하고 있으며 가끔 제가 자작한 오디오가 음악감상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우리 고전음악동호회에는 소그룹으로 진공관오디오 자작모임이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운영위원회로부터 세계규모의 축제인 '2002전주세계소리축제('02.8.24.~9.1.)"의 소리체험관 '진공관과 소리의 만남' 부스를 운영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포스코맨들의 건전한 여가선용을 위해 회사에서 지원까지도 해주고 있는 동호인그룹의 활동상을 널리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망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8월24일 토요일 아침 9시 반, 저와 제 아내, 이용구 총무, 진민장 섭외담당이 소리체험실에서 사용할 앰프로 내가 만든 2A3 싱글앰프,100TH 싱글앰프, 845싱글앰프, KT-88 푸슈풀앰프, 그리고 이용구 총무가 만든 마란츠 7 회로의 프리앰프와 전원장치 등을 승용차에 싣고 진동을 싫어하는 장비들인지라 규정속도 이하로 달려 축제현장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도착하니 12시 반이었다.

 

 


전주의 별미인 육회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꼼방오디오동호회(회장 김용민)에서 미리 설치해 놓은 스피커, 굳맨 액숌 80, 탄노이 로얄 미니, 비지톤 모니터스피커 중에서 비자톤을 사용하기로 하고, 청취공간과 스피커, 앰프와의 매칭을 위해 바이어스와 프드백양을 조정하고 장르별 음악을 틀어가면서 웜업하니 만족할 만한 소리를 내 주었다.



 

우리 부스는 정말 인기가 대단했다. 다른 부스는 그냥 줄지어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우리 부스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후레시를 터뜨리고 메모도 하고 질문도 해 가면서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 귀에 익숙한 판소리나 대중가요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선곡하여 들려 주었다. 845나 100TH 싱글앰프는 진공관의 영롱한 불빛 때문에 KBS나 YTN 등 취재진들의 인기를 독차지했고 호방하고 두터운 소리로 이에 보답하였다.

 



특히 방음처리된 소리체험실에서는 KT-88 푸슈풀 앰프의 소리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은은하게 사라져 가는, 순발력도 좋고 여운도 좋은, 작곡가와 연주가의 혼의 진동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심금을 울려주는, 온몸으로 들을 수 있어 정말 닭살이 돋는, 기막힌 소리를 내 주었다. 실황연주로 착각하고 시청실 입구에 드리워진 커튼을 치켜올려보는 사람들, 밀려드는 청중들, 몇시간 뒤 CD를 가지고 다시 찾아와 자신의 CD를 걸어달라고 요구하는 분들도 많았다. 정말 대 성황이었다

내 자신도 정보를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해 주는 꼼방오디오동호회에서 가져온 유리디체 라인프리와 비자톤 모니터 스피커, 그리고 내가 만든 KT-88 파워앰프가 이렇게 상성이 잘 맞아 음악성이 풍부한 좋은 소리를 내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오디오 세계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3월1일 일요일 전주 세계소리축제 마지막날, 주력 앰프를 845 싱글앰프로 바꾸었다. 전주에서 가까운 삼례에 계신다는 국악선생님의 요청도 있었고 소리축제에 참가한 외국인 아티스트들에게 우리 국악을 소개할 욕심으로 주로 국악을 틀어 주었다.

국악을 듣는데도 역시 순발력과 여운이 풍부한 진공관 앰프였다. 우리 국악을 생동감 있게 재생하는 기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모두가 서양듬악에 맞춰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공관 소리체험실에서 사용한 유리디체 라인프리와 845 싱글앰프, 비자톤 모니터 스피커는 정말 사실적인 소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에 음악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음악적 표현력이 풍부한 생동감 있고 임장감이 넘치는 소리를 품어내어 방문객들의 넑을 빼놓기에 춘분했다. 

철수한 기기들을 싣고 광양으로 내려가는 승용차 안에서 집사람이 며칠간 연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남편이 달리 보인다'고 말하였다.  이 한마디의 칭찬이 그동안 광양과 전주를 오가면서, 행사를 진행하며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실내장식이 취미이고 조용하고 깔끔한 성품의 아내, 집에서 동호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가구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고 공개음악감상회를 위해 거실의 시스템을 모두 음악감상회장으로 옮겨 실내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려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잘 이해해 주면서 음식까지 준비해준 아내, 다음날 시험인줄도 모르고 아빠가 고전음악이나 오디오 얘기로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해도 아무 불평없이 공부에 전념해준 딸 경현이.

가족 모두가 나의 취미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말없이 도와준 것으로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보! 사랑해요, 경현아! 사랑한다.

1978년1월6일 포스코에 입사하여 광양제철소 전기제어설비부장을 끝으로 2004년 3월 18일 퇴직하기 까지 26년간 포스코에 근무하면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았고,결혼도 하여 윤택한 가정도 일구었고 회사의 지원으로 자녀교육도 무사히 마쳤으며, 무엇보다도 광양제철소 고전음악동호회를 이끌면서 오디오와 음악을 좋아하는 광양제철소 직원들을 비롯하여 인근지역 동호인들과도 유대를 강화하고, 폭넓은 사귐을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이 추억거리로 남으며 지금까지도 따뜻하고 좋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다.

1997년 7월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그동안 잘 사용했었던, 지금이라도 당장 인수하고픈, J.A. 미첼의 GYRODEC 턴테이블, 오르토폰의 SME3010 톤암, WADIA 8과 15의 CD 트랜스포트와 DA 컨버터는 저에게서 인수해 가셨던,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시는 전남 드래곤스의 김사장님께서 광양을 떠나기 전 개인적으로 송별연을 열어주면서, 그동안 탐나는게 있었다, KT-88 푸슈풀 앰프를 선물로 주고가라는 간청에 넘겨 드리고 말았다. 언젠가 회수해야지...

2004년 3월19일 포스코의 전기제어분야 자회사인 포스콘의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겨 포항사업부문장을 맞게 되었다. 전임자가 사용하던 사택이 빌 동안 음악을 듣기 위해 가지고 간 6BQ5 푸슈풀 앰프와 데논 CDP, 탄노이  Mercury 2 북쉘프 스피커를 집무실에 설치하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수주영업에 심신이 몹시 지쳐 있을 때,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 일과중에서 조그맣게 틀어놓고 일을 하였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집무실에는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다. 포항 본사에서는 6BQ5 푸슈풀앰프에 탄노이 북셀프형 Mercury 스피커를, 삼성동 서울사무소에서는 2A3 싱글앰프를, 인천공항사무실에서는 송신관 829B 파라싱글에 영국 Gale사의 북셀프형 3020 스피커를 사용하였고,  지금은 2A3 싱글에 알텍 755E 풀레인지 스피커를 물려서 사용하고 있다. 

2008년 2월27일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처리시설 유지보수 용역업체를 개업하였고, 회사가 안정을 찾고난 뒤 그동한 중단하였던 진공관 오디오 자작에 다시 손을 대게 되었다.

그동안 일생일대의 역작으로 꿈꿔왔던 845 푸슈풀앰프를 만들어 보려고 검토하던 중 미국 Cary Audio Design사의 대략 300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CAD-211M,
Class A Pure Balanced Design 300B Drive 845 Pushpull Amplifier, 이 앰프의 특성을 설명하는 수식어만 보아도 정말 빵빵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순수한 소리를 내 줄 거라는 판단이 섰기에 한번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회로를 입수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오디오인드림이라는 곳에서 공동구매를 추진하였고 캐리 오리지날 출력트랜스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제작하였다는 얘기를 듣게되었다. 인터넷 장터를 검색하던 중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캐리 211M의 복각품 AD-845를 발견하고, 오리지널 출력트랜스의 구입이 용이하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는 등의 이유로 일단 중고를 구입하여 들어보기로 하였다. 집사람과 함께 인터넷에 올라온 판매자의 집을 찾아가 구입하여 낑낑거리고 리스닝룸으로 옮겨 전원을 넣고 들어본 순간 대 실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본 어떤 앰프보다도 못한, 힘없고 나약한 음악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소리였다. 회로를 입수하지 못해 수소문하던 차에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유사회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리고 오디오인드림에서 공동구매할 당시 제작에 직접 참여하였다는 인천분을 만나 Cary 오리지날 회로라는 것도 건네받았다. 그 회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원회로에 약간의 변형이 가해져 있는 것도 알게되었고, 그래서 독자적으로 음악성 개선을 위한 개조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개조작업을 하는 6개월간, 몇 번이고 내쳐 버리고 싶었던 힘든 과정을 잘 참고 견딘 끝에, 드디어 찾아낸 순발력과 여운, 투명하면서도 침투력이 강한 음악성이 풍부한 앰프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동안 경험한 것들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보다는 AD-845를 사용하는 모든 분들이 정보를 공유하여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최종 결과만을 상세히 정리하여 이 홈페이지에도 올려 놓았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있었던 청음회에 참석하셨던 저의 오랜 오디오 벗님, 포스코건설 이모 전무님, 포스코 황모 전무님, 포스코 외주파트너사의 하모 사장, 강남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친구 윤모씨 등에게 인천의 이모씨가 보유하고 있던 샤시를 포함한 주요 부품들을 모두 구입해 개조한 AD-845를 만들어 드렸는데 모두 만족해 하시며 음악을 즐기고 있다.

오디오매니아는 끊임없이 소리탐구에 도전한다. CAD-211M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가 있긴 하나 300B 푸슈풀의 부하로만 사용할뿐 845 드라이브는 커플링콘데서를 거쳐서 하고 있다. 커플링콘덴사를 떼어내고 2차탭을 845의 그리드에 직접 연결하면 커플링콘덴사의 착색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면 과연 어떤 소리일까? 일본 출장중 대용량 인터스레이지 트랜스를 구입하였고 여기 저기에서 끌어모은  캐리 오리지널 트랜스(전원, 초크, 출력트랜스)와 에어로복스 전해콘덴서, 샤시등을 구하여 새로운 1대를 조립중에 있다.

진공관오디오 자작메니아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진공관 앰프를 만들었으나 같은 회로로는 두 대를 만들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845 푸슈풀 앰프를 모두 5대를 만들어 4대는 음악을 좋아하는 오디오벗님들에게 좋은 일을 했고 1대는 내 리스닝룸에, 그리고 현재 조립하고 있는 것도 1대가 있으니 모두 6대를 만든 셈이다. 그 소리가 마음에 들긴 들었던 모양이다.

일본에 주재하면서 2년여의 각고 끝에 완성된 100TH 싱글앰프, 2002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영롱한 외관과 침투력이 강한 소리로 수많은 매스컴으로 부터 찬사를 받았고 집사람이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100TH 싱글앰프는 용산 미군부대에 근무하다 전속명령을 받고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박재학씨에게 보내졌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되어 우리집 리스닝룸에 청감이 뛰어난 아들과 함께 찾아와 내가 만든 진공관 앰프를 이것 저것 들어보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2009년 8월말, 예전에 들었던 100TH의 음악성과 묘한 마력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아왔다, 일생에 좋은 일 할 기회가 몇 번 없는데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100TH싱글앰프를 박재학씨에게 넘겨주고 집사람에게 엄청 혼이 났다. 시애틀로 건너간 100TH 싱글앰프를 접하고 나서 박재학씨의 아들은 Symphony Orchestra가 자기 집에 와서 연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고, 박재학씨는 Yo Yo Ma가 혼신을 다해서 연주하는 모습이 눈을 감으면 보이는 듯 하다고 하고, 이웃집 할아버지는 이게 무슨 발명품이래 하면서 파란 불빛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배호의 노래를 틀어 놓고 향수에 젖는다는 등의 얘기가 흘러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모두가 흐뭇해 하며 만족스럽게 듣고 있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100TH 싱글앰프의 모습이 자주 뇌리에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집사람의 성화에 못이겨 100TH 싱글앰프를 다시 만들기 위해 일본에 주문한 전원트랜스, 초크트랜스, 인터스테이지트랜스, 출력트랜스 등이 항공편으로 회사에 도착했는데 트랜스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운송료, 통관수수료 등 제 비용도 만만치 않고 엔화가 올라서인지 예상밖으로 많은 돈이 들었다.  

나의 소박한 꿈 중의 하나가 일본에 살면서 자주 갔었던 도쿄 신쥬쿠의 게이트원과 같은 조그만 재즈카페를 열어 나비넥타이를 매고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내리면서 재즈를 자유스럽게 듣는 것이었다. 오직 직장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퇴직한 선배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우울증을 앓고 방황하시는 모습을 보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집사람의 반대로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청담동 경기고 돌담길에서 'Smooth Jazz'라는 째즈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사장으로부터 2009년 12월15일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재즈카페에서 잘 사용하고 있던 AD-845 한덩어리가 고장이 났다는 것과 임시방편으로 트랜지스터 앰프로 바꾸어 영업을 했는데 단골고객들로부터 '음악이 왜 이래' '내가 이런 음악 들으러 여기까지 왔나' 등의 심한 얘기를 하며 떠난 뒤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고객들에게 과거와 같은 고운 소리의 음악을 들려드려 감성을 자아내고 앤돌핀이 솓구치게 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싶은데 AD-845를 수리하는 것도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중 오디오 동호회의 지인으로부터 저와 상담하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오디오와 음악릉 좋아하는 동호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카페 'Smooth Jazz'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듯하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좋아한 탓에 좋은 직장 그만 두고 재즈카페를 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무기력에 빠져있는 이사장을 다시 일으켜 새우고 싶어 카페의 음향기기들을 정상화 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토요일) 집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러나 한번 발을 디디면 푹 빠져드는 제 성격을 아는 집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방문하여 문진하고 AD-845의 커버를 열어 진단하고 소요 부품을 조사하여 이사장에게 구해 놓으라 하였다. 그리고 영업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 그리고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을 택해서 하는 작업인지라 수리에는 대략 두달 정도 소요되었다. 물론 소리만 나도록 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대대적인 개조작업으로 음악성을 찾아주어 이사장이 자신있게 음악을 틀 수 있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Smooth Jazz'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이사장이 잃어 버린 웃음을 되찾아 손님들과 어울려 감흥과 감동에 젖어 흐뭇해 하시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이제 노안이 심해 눈이 어두워 납땜질도 힘들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일본 주재원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사가지고온 각종 트랜스류와 진공관들을 사용 조립하여 새로운 진공관 앰프를 완성시켜고 지금까지 만들어본 자작진공관오디오 청음회를 겸한 전시회를 한번쯤 열어보고 싶은 또 다른 소박한 꿈도 가지고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가족 그리고 음악과 함께하는 건전한 여가생활을 하실 것을 권하고 싶다. 음악감상은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며 스트레스 해소 등의 정신건강적인 측면이나 인격수양의 수단으로서 음악을 편히 듣는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르를 구별하지 말고 혼란스러운 음악은 제외하고 비교적 폭넓고 다양하게 많은 음악을 듣으시기를 권장한다. 감사합니다.
 

2010년 4월 4일 저녁 오디오전도사 김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