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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유지 목적으로 주말이나 서너 시간 여유가 생기면 가끔 가까운 산을 찾는다. 최근 잦은 비로 인해 산을 찾지 못하다가 반짝 날이 갠
틈을 이용하여 난봉산에 올랐다. 콧속으로 드나드는 신선한 공기는 너무 상큼하여 오히려 짜릿했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마치 바닷물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짠물이 뒤범벅이 되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웠고 등은 온통 땀에 젖어 서서히 배낭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열리는 것 같아 더 없이 좋았다.
스치고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그만한 행복은 다 느끼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중 이어폰을 꽂고
있었던 한 중년 신사는 더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 명곡들만을 모아 녹음해서 선물로 준 것이라는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 온통 흥겨운
댄스곡들이었지만 그 분은 최고의 명곡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었던 순간은 물론 한참 동안을 명곡이라는 이미지에 강한 쇼크가
전해졌다. 내게는 그저 평범한 댄스곡인데 명곡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또 다른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산을 내려오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그 분의 얼굴을 떠올릴수록 더더욱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느덧 명곡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쉽고 가볍고 단순한 곡은 명곡일 수 없다’는 편협한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다시
발길을 돌려 산을 올랐다.
과거 근 삼십여 년 동안 명곡을 찾아 험난한 여정을 달려왔던 것이 단 한순간에 무의미해져버린 것을
느끼고는 도저히 산을 내려올 수가 없었다. 군데군데 설치된 운동기구들조차도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어느새
주위가 어둑어둑해졌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하산을 재촉했다. 해가 지면서 멀리 순천만에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면서 멋진 자연의 경이로운 곡예가
시작될 무렵, 머리 속에 떠오른 ‘니니로소’의 트럼펫 연주가 떠올랐다. 이윽고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의 최고의 명곡은
‘밤하늘의 트럼펫’ 일거야.
만약 누군가 살과의 전쟁에 돌입해 있거나 에어로빅댄스에 열중하고 있다면 경쾌한 댄스곡이 최고의 명곡일
것이다. 그네들에게 천하의 명곡이라고 하는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는 덜 감동적이거나 듣기 싫을지도 모르며, 들뜬 기분으로 새로 산 휴대폰을
오직 시계로만 사용하고 있는 한심한 처지의 노처녀나 노총각이 있다면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나 Beatles의 ‘Yesterday’ 또는
‘Let It Be’ 등의 곡이 더 가슴으로 다가올 것이기에 감히 명곡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새로 깨달은 뜻깊은 하루는 그렇게 또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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