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혼식의 아름다움
(사람사는 이야기, 1992년 2월호)

글·사진/박덕은

청춘시절 누구든 초례장에 서서 백년회로를 기약하지만 세월의 굴곡이 깊어 그 언약을 어쩌지 못함이 인지상정이다. 그러기에 해로하는 부부의 삶, 그것도 혼인한지 예순돌을 맞이하는 노부부의 회혼례는 뭉클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광주시 북구 삼소동 조그만 마을에는 향기로운 바람이 불었다. 단풍든 당산나무도 흥에 겨워 한들거리고 있었다. 알음이 있는 터라 시골 구경도 겸해서 웃어른을 따라 나섰다.

결혼한 지 60년이 되는 날 치뤄지는 회혼식이 있단다. 이날이 매우 의의 있는 것은 결혼한 후 60여년 동안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이 없어야 되고 그중 이혼한 자식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야말로 복인이 아니면 이 회혼식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단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쏠렸다.

주인공김학조씨(78세)다. 부인 이남순씨(76세)와의 사이에는 3남4녀의 다복한 자식을 두었다. 첫아들은 김영룡씨(55세,호남원예고교 교감), 들째아들김영남씨(42세, 광양제철소 과장), 셋째아들은 김영빈씨(35세, 금천레미콘 공장장)이다. 첫딸 김영애씨(51세)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고, 둘째딸 김영숙씨(48세)는 남편 이재우씨(50세, 건축업)와, 셋째딸 김영월씨(45세)는 남편 김종술씨(52세, 공무원)와, 넷째딸 김영희씨(39세)는 남편 정한영씨(41세, 약국업)와 각각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렇듯 많은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모의 회혼식을 지켜보는 그 눈길이 여간 곱지 않았다. 모여든 동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표정도 사뭇 진지했다. 모두들 나도 저런 기쁜 날을 맞을 수가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학조씨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한 마을 사람이 말해 주었다. 더욱이 일제 시대 때는 강제 징용당하여 멀리 버어마까지 끌려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했다. 탄약운반하는 노무자로 생활하던 그때가 그에게 아마 까마득한 옛날로 여겨지겠지만 생애동안 그때 일을 한번도 잊어본 일이 없을 만큼 끔찍했던 과거로 기억되고 있으리라.

회혼식이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모여든 동네사람들과 친지들의 눈길을 끌어모은 다음 식순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간략히 회혼식의 주인공들에 대한 약력과 참고사항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함이 들어왔다. 얼굴에다 온통 숯검정을 칠하고 새끼로 커다란 안경태를 만들어 낀 사람이 함을 진 말이었다. 몇 발짝 떼어놓고 술타령, 여비타령, 안주타령을 했다. 그러나 까다롭지 않은 함을 진 말 덕분에 순조롭게 함은 들어오고 친척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신랑이 입장했다. 세 아들이 말을 만들어 아버지 신랑을 태우고 들어왔다. 동네사람들은  '신랑이 아직도 젊다 젊어'하며, 신랑을 부추겨 주었다. 신랑은 들어와 묶인 닭과 약간의 음식, 그리고 대나무가 꽂혀 있는 탁자 앞에 섰다.

다음에는 신부가 입장했다. 둘은 마주한 채 예식에 따라 절을 했다. 신랑은 시키는대로 얌전히 절을 했다. 연신 싱글벙글 웃어가며 인사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신랑이 참 말을 잘 듣는군 그래'하며 놀려댔다. 신부의 인사하는 모습이 마치 새색시를 보는 듯했다. 다만 주름진 얼굴만이 다를 뿐이었다. 수줍음, 그리고 어색함 등이 새색시 때를 연상케 했다. 볼에 붙힌 빨간 연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회혼식 과정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시종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껄껄껄 웃어대고 때론 빙그래 웃고 때론 박수를 쳐가며 웃어댔다. 식을 하는 주인공들이나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함께 웃고 기뻐하는 그야말로 순박한 자리였다.

술 한잔씩 주고받는 간단한 의식이 끝나고 주인공이 나란히 앉아 손님들을 접대하는 순서로 접어들었다. 신랑 신부 앞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놓여졌다. 식구들과의 사진촬영이 끝나자 온 동네사람들과 축하객들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다.

떡국이 나오고 과일이 나오고 술이 나오고 그야말로 천국잔치였다.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전경이었다.

여기에 모인 그 누구나 마음속으로 '나도 저런 기쁜 날을 꼭 갖고 싶다'고 염원했으리라.
떠나 오는 발걸음도 가을하늘의 구름처럼 가벼웠다.

(월간문화교양지, 사람사는 이야기, 1992년 2월호, 100쪽~101쪽에서)


지난 (2006년) 2월20일 어머님의 장례를 마치고, 내나이 57세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엄습해 오는 외로움을 달래며, 정신을 차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버님(김해 자)은 전남 광산군 지산면 대촌리(현 행정구역 광주광역시 북구 삼소동 대촌부락)에서 음력 1914년 9월24일 탄생하시었고 우리 어머님(전주 자)은  전남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에서 음력 1916년 3월 1일 태어나시었으며 아버님은 열여덟살(18세)의 나이에 열여섯살(16세)이셨던 어머님과 음력 1932년 9월14일 결혼하시었고 댁호덕실양반 이었으며, 논 서마지기(600평)를 상속받고, 무쇠밥솥과 그릇, 수저 젓가락 등 극히 일부의 가재도구만을 챙기어 개천가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분가하시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맨주먹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신 후, 한눈팔 겨를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근면성실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었고,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땀흘린 만큼 거두어들인다.' 라는 신념으로 근검절약하여 돈이 모아지는대로 농토를 늘려나가 논이 3000평, 밭이 1600평의 어엿한 중농으로 자수성가 하시었으며, 젊어서부터 300여호 대촌부락에서 '신수좋은 양반' 하면 '덕실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가장이셨습니다. 특히 우리 부모님께서는 어려운 살림살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자녀교육에 애쓰시어, 자식들 모두 고등교육을 시키시었고, 참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신 분이셨습니다.

특히 아버님께서는 우리 7남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라, 근면성실하고 근검절약하라, 정직하고 사람다운 행실을 하라, 가치있는 사람이 되라'는 등의 말씀을 늘 하셨고, 또한 우리 7남매는 아버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과 또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한사람도 삐뚤어짐없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의 아버님과 같은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제가, 부모님의 입장에 있었다고 가정하여 생각해 보아도, 오직 농사일로만 7남매를 키우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며, 비록 학교문턱도 밟아보지 않으신 분들이시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정말 장하신 부모님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으며, 강인하시면서도 부처 보살처럼 진솔하게 사셨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부모님의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7남매는 한마음 한뜻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동내분들과 일가친척, 그리고 친지분들을 모시고 1991년10월27일 금강혼식(회혼례)을 고향집에서 성대하게  치루어 드렸읍니다. 회혼례는 지산면 관내에서는 처음있는 일로서 참석하신 분들 모두가 부러워 하셨읍니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1997년 11월24일(음력 10월25일 월요일) 오후 1시경 향년 84세를 일기로 홀로 남으신 어머님께서 아버님의 보살핌없이 어떻게 사실까를 걱정하시면서 7남매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하시었습니다.

동생 영빈이로부터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일본 동경에서 며칠전 급거 귀국하여 아버님 곁을 지키고 있던 저에게 세상을 떠나시는 바로 그날  '내 묘자리는 지관과 미리 자리까지 봐 놓고 나무말뚝을 박아놓았으니 그대로 파라', '돼지는 누구내 집 것이 좋으니 그 돼지를 사다 잡아라'는 등의 본인의 장례지휘를 돌아가시기 불과 몇시간 전에 하셨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저 세상으로 가시는 것을 미리 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 까지도 자식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이신지 지난 2006년 2월 18일(음력 1월21일 토요일) 00시 40분경 큰아들 집에서 주무시는 가운데 향년 91세를 일기로 영면하시어 아버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며느리와 자식들에게 '대궐같은 집을 성주했다' 그리고 '돼지도 수십마리 잡았으니 잘 대접해라', 큰며느리에게는  '너 정말 고생했다' 는 등의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어머님이 세상을 정리하고 계신 줄도 모르고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고 합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제 자신 다행스러웠던 점은 양친 모두 임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엄밀히 얘기하면 12시간 전에 우리 부부는 내가 지부장을 맡고 있었던 제어자동화시스템공학회 광주전남지부 학술대회 참석차 전남대학교에 가는 길에 형님댁에 들러 어머님을 뵙고 그리고 행사가 끝나고 다시 어머님 곁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님 장례를 치르면서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좀더 자주 찾아 뵙고 잘 모셨어야 했는데 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셔야 돌아가신 뒤 눈물을 적게 흘리고 후회를 덜 한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자식들을 잘 키우시고 가르쳐 놓으신 덕에 휴일 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분들이 원근을 불문하고 조문과 조의를 배풀어 주셨고 그리고 친지들로 부터 보내져온 수많은 조화 속에서 성대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은혜를 다 갚지도 못한 자식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성주를 마치신 대궐같은 집에서 아버님과 함께 극락세계에서 영생하시옵소서.

2006년 2월24일 불효자 김 영 남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2007년 12월4일(1997년11월24일:음력10월25일) 아버님 기일이고, 어머님은 2006년 2월18일(음력 1월21일)로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10년째이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신지도 2년째입니다.

큰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앞에 삼가 아뢰옵니다. 지난 어머님 제사때 아뢰온데로 금년 아버님 기일에 어머님과 같이 제사를 모시고자 하오니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과 어머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부모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근면 성실하게 노력하면 모든 일이 뜻같이 이루어진다'는 말씀 명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결혼하신 후 분가하실 당시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로 출발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밤낮없이 노력하신 결과 자수성가하셨고 상하대에서 제일 신수좋은 양반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해줄 정도로 모범가정을 이루어 주셨고, 저희 칠남매를 낳고 가르쳐서 남들 앞에 부족함이 없는 자식들로 성장시키시고 결혼 후에도 모범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아버님 어머님 손자들 33명 모두 사회에서 남들이 부러워 할만큼 성장하여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60세의 회갑연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는 처음있는 일이었고 남들이 다 부러워 할 정도의 큰 잔치로 부모님의 크나크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코자 저희 칠남매가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한 행사였고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 자식이 부모님께 지켜야할 도리를 다한 그러한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칠남매 자식들은 부모님의 높고 넓으신 은혜를 항상 잊지 못합니다. 부모님께서 항상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라는 말씀 잊지 않고 생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큰 자부를 비롯하여 두 자부 큰 딸을 비롯하여 세 딸이 정성을 다하여 음식과 제수를 마련하여 올리오니 두루 흡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안 내내 화목하고 행복하여 번창한 가정 이루고 다 건강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라옵고 아버님 어머님의 이승생활도 마냥 행복하고 평안하시옵기를 빌어 드립니다.

2007년 12월 4일

큰아들 김 영 룡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서기 2008년 11월22일(음력 10월25일) 아버님의 기일입니다. 아버님 돌아가신지 벌써 11년째입니다. 2006년 2월18일(음력1월21일)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3년째입니다.

큰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앞에 상가 명복을 빕니다. 저 지난 어머님 제사 때 아뢰온대로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의 제사를 같이 모시려고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항상 하시는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면성실하게 노력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시든 말씀 명심하고 있습니다. 형제간에는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 안된다고 하시든 말씀 되세겨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결혼하신 후 분가하실 당시 넉넉한 살림이 아닌 가운데도 근면성실하게 노력하시어 큰 살림을 이루시었고 자수성가하심으로써 상하대 마을에서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할 정도로 모범가정을 이루시었고 저희 칠남매를 낳아 기르고 가르쳐서 출가시킴으로서 앞날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자식으로 자라도록 독립심을 길러 주셨기에 저희들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잘 성장하여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회갑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도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큰 잔치는 저희 칠남매가 한마음 한뜻으로 치룬 행사이어서 저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만큼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봅니다.

들째 영남이도 2004년 3월 포항제철 전기제어부장을 끝으로 퇴직하여  계열회사 포스콘 상무이사로 4년간 재직하다 금년 2월 퇴임한 후 아이비티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85명이나 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빈이는 둘째가 경영하는 회사의 관리부장을 맡아 잘 하고 있으니 막내 걱정은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영남이가 하는 사업을 보셨드라면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고 동네분들에게도 자랑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영남이가 경영하는 회사가 잘 되도록 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칠남매 자식들은 부모님의 높고 넓느신 은혜를 항상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라는 말씀 잊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합니다.

오늘 큰 자부를 비롯하여 두자부와 세 딸이 정성을 다하여 음식과 제수를 마련하여 올리오니 두루 음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안 내내 가정 화평하고 건강하며 번창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큰아들 영룡을 비롯하여 영례, 영숙, 영월, 영남, 영희, 영빈 칠남매가 아버님 어머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

2008년 11월 22일

큰아들 김 영 룡
 


아버님 어미님 기제사 축문

 오늘 서기 2009년 12월11일(음력 10월25일) 아버님의 기일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12년째입니다. 어머님이 2006년 2월18일(음력 1월21일) 돌아가신지도 벌써 4년째입니다.

큰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 앞에 삼가 아뢰옵니다.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 제사를 같이 모시려고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항상 하시는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검절약을 생활화 한다면 자립할 수 있다는 말씀 명심하고 있습니다. 형제간에는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아니하며 우애하라는 말씀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1932년 9월14일 결혼하시어 분가당시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도 신혼살림을 차리셔 근검절약을 생활화 하시고 성실하게 사셨던 모습은 저희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해마다 논을 사서 30마지기나 되는 전답을 마련 자수성가 하심으로써 상하대 300호중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할 정도로 모범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희 칠남매를 낳아 기르시고 가르치실 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신 말씀 명심하고 있으며 저희 칠남매 모두 출가하여 사글세 방에서 출발하였지만 부모님의 생활을 보고 배우면서 자랐기에 근검절약하여 모두 집을 마련하고 독립심을 심어 주셨기에 모두 자립하여 앞날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자식으로 성장하였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한 결과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범가정을 이루어 독립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회갑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도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자식된 당연한 도리로써 저희 칠남매가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하고 마련하여 치룬 큰 잔치이기에 저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들째 영남이도 부모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포항제철에서 26년간 근무하다 광양제철소 전기제어설비부장을 끝으로 2004년 3월 퇴직하고 포항제철 자회사인 포스콘 상무이사로 4년간 근무하다 2008년 2월 퇴직한 후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처리시스템 유지관리 용역업체인 주식회사 아이비티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일을 잘 경영하고 있으며 막내 영빈이도 영남이 회사의 관리부장을 맡아 소임을 다하고 있으며 회사는 날로 번창해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큰손녀 희영이는 미국 조지아주립대학교 조교수로 취직하여 열심히 가르친 결과 존경받는 교수가 되었고, 큰손자 광섭이도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어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칠남매 자식들은 부모님의 높고 넓으신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라는 말씀 명심하여 우애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일이 돌아올 때 마다 큰 자부는 한달 전부터 신경을 써서 재수를 마련하고 두 자부와 세 딸은 정성을 다하여 음식과 재수를 마련하여 올리오니 두루 흠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안 칠남매 가족 모두 내내 행복하고 사업 번창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부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

큰아들 영룡, 영례, 영숙, 영월, 영남, 영희 영빈 칠남매가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2009년 12월11일

큰아들 김 영 룡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2010년 11월30일(음력 10월25일) 아버님 기일입니다. 아버님 돌아가신지 벌써 13년째입니다. 2010년 2월18일(음력 1월21일) 어머님 돌아가신지도 벌써 5년째입니다. 큰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앞에 삼가 명복을 빌며 아뢰옵니다. 어머님 탈상 때 아뢰온대로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의 제사를 같이 모시려하오니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하시는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면 성실하고, 근검절약을 생활화 한다면 자립할 수 있다는 말씀 명심하고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님이 1933년 9월 14일 결혼하시어 분가할 때, 논 서마지기 600평을 상속받아 농사짓고, 어머니는 밭에 목화를 심어 길쌈하여 짠 무명배는 벽장에 가득 쌓여있었고, 이것을 팔아 논밭을 사기 시작하여 제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논이 3000평 밭 1600평의 어였한 중농가를 이루어 주시었고, 저희 칠남매를 낳고 길러주시고 가르쳐 주셨으니 부모님의 은혜 망극하여 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모든 일의 귀감이 되어 자수성가하셨기에 상하대 300여호에서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칭송할 만큼 모범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버님은 담배도 거의 피우시지 아니하시고 술은 약간 드셨는데도 돈은 필요한 곳에만 꼭 쓰시는 분으로 우리 칠남매를 가르치실 때에도 거짓말 하다 걸린 날에는 용서하지 않을 만큼 혹독하게 가르치셨고, 항상 하시는 말씀 '사람이면 다 사람인줄 아느냐, 사람다운 행실을 하여야 참사람이다'고 하신 아버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여 생활화하였고 부모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배움으로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으며, 저희들도 남 앞에 부족함이 없는 자식으로 성장하였고, 저희 칠남매도 모두 자수성가하였으니 이것이 아버님 어머님의 가르침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님의 손자 36명은 부모님 뜻에 잘 순종하고 공부 잘 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어 모두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님의 회갑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도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잔치는 저희 칠남매가 한마음 한뜻을 모아 치른 행사여서 저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칠남매 자식들은 부모님의 높고 넓으신 은혜 항상 잊지 않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며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큰 자부를 비롯한 세 자부 큰 딸을 비롯하여 네 딸이 정성을 다하여 제수를 마련하였아오니 두루 음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안 모두 내내 행복하고 사업 번창하며 건강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아버님 기일에 큰아들, 영례, 영숙, 영월, 영남, 영희, 영빈 칠남매가 아버지 어머님 기일에 삼가 명복을 비옵나이다.

2010년 11월 30일

큰아들 김 영 룡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서기 2012년12월8일(음력10월25일), 1997년11월24일(음력10월25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5주기입니다. 2006년2월18일(음력1월21일) 어머님께서 향년 91세를 일기로 돌아가신지 7년째입니다.

킁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 앞에 삼가 아뢰옵니다.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의 제사를 함께 모시려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 살아생전에 저희들에게 항상 말씀하셨던 ,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검 절약하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생활한 결과 7남매 모두 잘 살고 있습니다. 형제간에는 좋은 말만 하고 시기질투하면 안된다는 말씀 되세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분가당시 논 600평 밭 200평을 물러받아 넉넉한 살림이 아닌 가운데 신혼살림을 차린 이래 논 3000평 밭 1500평으로 늘려 자수성가 하심으로 상 하대 대촌부락에서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송받을 만큼 모범가정을 이루어 주셨고, 저희 7남매를 낳고 기르시며 앞날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가르쳐 출가시키시었고, 저희 7남매는 부모님의 모범된 생활을 보고 배움으로서 근검절약을 생활화 하고 혼신을 다해 노력한 결과 모두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며 모범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손자 35명도 부모님의 뜻에 따라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잘 성장하여 대학 교육까지 제대로 받고 사회에 잘 적응하며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회갑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성대한 잔치로, 저희들 7남매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치룬 행사여서 지금까지도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했던 마음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7남매 자식들은 부모님께서 항상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라는 말씀 잊지 않고 서로 우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큰 자부를 비롯한 세 며느리와 네 딸들이 아버님의 기일 때마다 평소 아버님과 어머님이 좋아하셨던 음식 한 가지라도 더 올리려고 준비하는 모습 정말 고맙고, 특히 넷째 영희가 우리 가족들이 둘러앉아 즐겨 먹었던 오리탕과 닭도리탕을 요리해와 우리 7남매 가족들이 그 때를 회상하며 웃음 꽃 만발한 가운데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주루 음향하여주시기 바라며, 우리 집안 내내 행복하고 번창하며 건강하도록 잘 보살펴 주시기 바라옵니다.

들째 아들 영남이는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아버님 어머님께서 이미 다녀 가셨겠지만, 배산임수, 뒤로 남산이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양택을 구하여 이사하였고, 지난해 결혼한 경현이가 득남하여 집안의 경사가 있었고 영남이와 제수씨는 손자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항상 아버님 어머님께서 넓고 높은 은덕을 배풀어 주시고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리옵고 부모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2012년 12월 8일

큰아들 영룡, 영애, 영숙, 영월, 영남, 영희, 영빈 올림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2013년 11월27일(음력 10월25일) 아버님의 기일입니다. 아버님 돌아가신지 16년째입니다. 2006년 2월18일(음력 1월21일) 어머님 돌아가신지도 8년째입니다.

큰아들 영룔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 앞에 삼가 아뢰옵니다.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 제사를 함께 모시려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 살아 생전에 저희들에게 항상 하시던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검절약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시던 말씀 명심하고 노력한 결과, 7남매 모두 자수성가 하였습니다. 형제간에는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 안된다는 말씀 되새겨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결혼하실 때 할아버지께서 논 서마지기를 주셔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도 신혼살림을 차리시고, 낮에는 농사일에 밤에는 어머님께서 무명배를 짜 벽장에 가득 쌓아둔 배를 팔아 논을 사시며 기뻐하시던 모습 저희 눈에 선합니다. 밤낮없이 근검절약하고 성실한 삶을 생활화하고 노력한 결과, 논 3000평 밭 1500평을 마련하여 자수성가 함으로써 상하대 대촌마을에서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할 정도로 모범가정을 이루어 주셨고, 큰 아들은 고등학교 교장이 되어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로써 명성을 날렸고, 들 째 영남이는 포항제철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담당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포스코에서 전기제어부장으로, 그리고 전기제어분야 자회사인 포스콘에서 상무이사로써 4년간 재직하면서 인천공항 2단계 확장공사중 가장 어렵다는 수하물처리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퇴직하여 그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회사를 설립 사장으로써 6년간 소임을 다하고 이번에 퇴임한다 합니다. 막내 영빈이는 형 회사 관리부장으로써 형을 보좌하며 사업을 번창하도록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자녀들을 열심히 가르침으로서 사회의 일꾼으로 키운 손자 35명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잘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잘 적응하고 다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회갑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큰 잔치는 저희 칠남매가 한마음 한뜻으로 치룬 행사여서 지금까지도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자식으로서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했던 마음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칠남매 앞으로도 우애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버님 어머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버님 어머님 기일에 한가지라도 더 제사상에 올리려고 말바우시장 양동시장을 다니면서 신선한 재료를 사오고, 세 며느리와 네 딸이 모여 화기애애하고 웃음곷 만발한 가운데 요리하고 한상 가득 제사상을 차려내는 것을 보면 큰 자부로써 책임을 다한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 제수로 내놓은 가오리는 녹동에서 서대는 신안지방에서 사온 것입니다.

우리집안 내내 행복하고 번창하며 모두 건강하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영남이 제수씨는 손자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우리집 인섭이 아들 제윤 민석이가 아픈 치례를 자주 합니다. 건강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칠남매, 영룡, 영애, 영단, 영월, 영남, 영희, 영빈, 아버님 16주기, 어머님 8주기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3년 11월 27일

 

아버님 어머님 기제사 축문

오늘 2014년 12월 16일 (음력 10월 25일) 아버님 기일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17년째입니다. 2006년 2월 18일 (음력 1월 21일) 어머님 돌아가신지도 벌써 9년 째입니다.

큰아들 영룡이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 앞에 삼가 아뢰옵니다. 어머님 탈상 때 아뢰온대로 금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 제사를 같이 모시려고 합니다.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항상 하시는 말씀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살며, 근면성실하고 근검절약을 생활화한다면 자립할 수 있다는 말씀 명심하고 생활화 함으로써 우리 7남매 모두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1933년 9월 14일 결혼하시어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는 논 3마지기 600평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어머님은 길쌈하시어 무명배를 짜고 아버지는 열심히 농사지어 제가 중학교 입학할 때는 논 3000평에 밭 1600평의 어엿한 중농가를 이루어 저희 7남매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주셔서 저희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주셨고 상하대 200호에서 신수좋고 자식농사 잘지은 사람은 덕실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받을 수 있는 모범가정을 이루어주셨고 항상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부족함이 없는 자식이 되도록 노력한 결과 저희 7남매는 모두 자립하였고 자식들도 출가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아버님의 손자 36명은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고 잘 자라서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희 회갑연과 결혼 60주년 회혼식은 지산면에서 처음일 정도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저희 7남매의 한마음 한뜻모아 치른 행사여서 저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어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7남매 다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과 재수를 마련하여 올리오니 두루 음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미국에 있는 큰손자의 아들 아버님 증손자 예찬이가 미국 어스틴 주립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연 5천불 4년간 2만불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니 집안의 명예이고 경사입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 큰아들 영룡, 영례, 영숙, 영월, 영남, 영희, 영빈, 7남매가 삼가 봉복을 비옵니다.

2014년 12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