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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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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8만 3857㎢, 인구는 807만 7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96.3명/㎢(2002)이다. 정식 명칭은 오스트리아 공화국(Republic of Austria)이다. 수도는 빈이고 공용어로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 빈 북쪽은 체코, 동쪽은 헝가리·슬로바키아, 남쪽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서쪽은 스위스와 독일에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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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포항제철소 2연주공장 건설과 조업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급사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VOEST ALPINE 사에 조업, 기계, 전기, 계장, 전산 등 모두 19명이 연수를 갔었다. 난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고 물론 비행기도 그때 처음으로 타 보았다.

 

주로 여행은 계장분야 연수를 같이 간 윤경한씨와 둘이서 하였다. 다른 분들은 돈을 남겨오기 위해 여행을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윤경한씨는 내가 다시 언제 오스트리아에 오겠느냐, 돈을 남겨가기 보다는 차라리 여행을 많이 하여 견문을 넓히겠다는 생각이 나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지금까지 오스트리아를 다시 가보지 못했다.

 

당시 내 친구로서 빈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김부순씨 그리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녀의 남편 김찬중 씨와는 음악의 도시 빈을 여행할 때마다 만났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철없었던 총각이 신혼부부를 찾아가고 그리고 친구가 뭐하러 돈들이고 호텔에서 자느냐 함께 자자며 소파를 펼쳐 침대를 만들어 주기까지 하면서 권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비좁은 원룸식 아파트에서 친구 부부, 갓 태어난 아이(충노)와 함께 자기까지 했다는게 왠지 쑥스럽기만 하다.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부부이다. 이젠 친구가 되어 버린 김찬중씨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광주시청에 근무하시다 정년퇴임하고 현재 조선대학교 초빙교수로 일하고 계신다. 김부순 씨가 꿈꾸었던 남편 Herr Doctor Professor Diplom Ingenieur Chan Jung Kim을 이루어 낸 내 친구는 지금도 빈에서 간호사 일을 계속 하면서 장성한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휴가를 이용하여 귀국한 날에는 우리부부와 만나 그 때의 철없던 시절의 얘기를 하면서 미소짓곤 한다.

 

세계적인 음악의 나라로 오스트리아를 꼽는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하이든, 요한 스트라우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탄생했거나 활약했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오스트리아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천재 음악가들을 만들어냈는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 오스트리아, 그 중에서도 수도 빈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확연해진다.

 

거리와 건물들을 보면 금세 교향곡이 울려 퍼질 것 같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왈츠를 추는 것만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의 여유롭고 품위 있는 자연환경은 이들이 악상을 떠올리기에 더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스트리아라는 오선지 위에 알프스에서 부는 바람소리로 악보를 그렸던 천재 음악가들의 고향 오스트리아.

 

'비엔나, 오직 너만이 내가 꿈꾸는 도시'라는 노래 가사가 있을 정도로 빈은 유럽인들조차 선망해하는 도시이다. 작은 유럽이라고 불리는 이곳 빈은 역사와 예술, 문화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또한 365일 아름답고 고풍적인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연중 계속 울려 퍼지는 곳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많이 찾았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생가와 발자취가 있는 곳이 바로 빈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유적지가 모여 있고 그곳엔 어김없이 깃발을 달아 '역사적인 유물'임을 표시해 두었다.이런 빈에서 가장 많은 발길이 닿는 곳은 '슈테판 성당', '오페라 하우스', '호프부르크 왕궁' 등이다. '슈테판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루어진 곳으로 지하에는 오스트리아 황제들의 내장을 넣어둔 항아리와 백골이 쌓여 있는 '카타콤페'가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슈타트오퍼'라고도 불리며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빈필 오케스트'라의 매혹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프부르크 왕궁'은 무엇보다 일요일 아침이면 미사를 들이는 그 유명한 '빈 소년 합창단'의 천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또 '쉔브룬 궁전'과 중앙묘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특히 중앙묘지에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의 유해가 있는 곳이고 역대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빈이 아닌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었던 '미라벨 정원'이 여기 잘츠부르크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곳이지만 모차르트가 태어나 음악의 신동으로 인정받았던 세계적인 음악의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특히 7,8월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는 '빈필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까지 합세하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명성이 높다. 덕분에 7,8월이면 세계적인 음악인들을 이곳 '잘츠부르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행객들은 '잘츠부르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게트라이데 거리'로 발길을 옮긴다. '게트라이데 거리'는 '잘츠부르크'의 최고의 쇼핑거리로 세계에게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 중에 하나다. 이곳이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상점마다 걸려있는 예술적인 간판 때문인데, 200년 전에 만들어진 간판도 있고 철로 만든 수공 간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찌릿찌릿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잘츠부르크'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 보아야할 모차르트 생가가 바로 이 거리에 있다.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손때 묻은 바이올린과 그의 필체가 적힌 악보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이곳은 바로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호헨 잘츠부르크 성'과 물의 정원으로 알려진 '헬부른 궁전'도 잊지 말고 가보아야 할 필수 코스다.

 

오스트리아를 음악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유명한 음악인을 많이 배출해서만은 아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를 가보면 어디서나 음악이 흘러나온다. 허술한 선술집에서부터 복잡한 시내 거리까지 음악은 바람처럼 항상 귓가를 맴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공기처럼 호흡한다. 단 하루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음악이 곧 삶인 것이다.

 

철강과 기차와 전차, 버스 등을 생산 해 내는 오스트리아의 공업도시 린쯔. 오스트리아는 제철 제강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포항제철 또한 린츠의 푀스트알피네(VAI)사에서 여러 분야의 기술을 도입한 긴밀한 관계에 있다. 린츠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임과 동시에 오스트리아의 대도시중 가장 녹지가 많은 도시이며 옛 문화재 또한 많이 있어 현대와 과거가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톱니없는 기차가 1889년 운행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여전히 운행중 인데 기차를 타고 푀스틀링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 또한 장관이다.

 

하우프트플라츠(중앙광장)엔 예전 히틀러가 세운 건물이 아직도 학교건물로 사용되고 있고, 유럽에 흑사병이 돌고 난 후에 황제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 역시 볼 만하다.

 

린츠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 가면 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태인을 수용, 학살했던 곳으로 유명한 유태인수용소 마트하우젠이 있다. 전범국가인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면서 죄를 참회하는 마음에서 박물관으로보존하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가스실과 감옥내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그 때의 참혹한 생활을 알 수가 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정말 순박하고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 주로 린츠에서 생활하였는데 그곳 주민들이 친절히 대해 주었고 그래서 곧잘 어울려서 같이 놀았다. 참으로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 주었다.

 

만약 한국을 떠나서 살아야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