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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960만㎢, 인구는 12억 8421만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134.2명/㎢(2002)이다.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s Rupublic of china)이다. 수도는 북경이고 공용어로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직장에 들어와 관심을 가졌던 것 중 하나가 계측표준 분야였다. 그래서 한국표준연구소를 자주 방문하였고 한국측정기기교정협회 양자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내가 중국을 처음 방문하게 된 것도 계측올림픽이라고 일컬어 지는 IMEKO(국제측정단체연합) 12차 세계총회가 1991년 9월 5일부터 9월10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열렸는데  그곳에서 내 연구논문을 발표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중국은 미수교국 이었기 때문에 여행이 제한된 나라였다. 중앙정보부에서 특별교육을 받고 여행허가를 받아 출국할 수 있었다. 홍콩을 거쳐 북경에 도착하니 중국기술감독국 요원이 나와 영접을 하였다. 모든 일정에 기술감독국에서 붙인 통역과 공안이 함께 하는 특별 대우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도착 첫날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환영만찬 이었다. 당시 북경 부시장이었던 주룽지(주용기)씨가 나와서 처렁처렁한 목소리로 소련공산당의 붕괴 사실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소련과 다르다는 것을 역설하고 이 자리에 모이신 과학자들이 도와 주셔야 하고 중국에 많이 투자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당시 중국 지도자 들의 태도와 중국계량연구소 등을 방문해 보고 머지않아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산해진미에 중국 전통기예단이 펼치는 공연을 보면서 첫날 밤을 보냈다.

 

논문발표가 끝나고 공식 여행으로 자금성, 이화원, 천단, 만리장성, 명13릉 등을 중국공안의 패트롤하에 기술감독국의 영어통역의 설명을 들어 가면서 고급스런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 규모나 역사성에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개최된 Rolling Conference에서 만나 사귀었던 북경과기대 무지춘 교수의 가족과도 북경에서 만나 하루동안 여행을 같이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상해 보산강철의 쉐용귀 연구소장도 상해에서 만나 보산강철도 둘러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제 처는 장인, 장모와 함께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여동생(처제)을 만나기 위해 1994년 10월 2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 왔고, 제 딸 역시 2004년 7월 일주일간 일정으로 상해와 북경을 다녀왔으며 역시 처제의 신세를 졌다.

두 번째 방문은 포스콘 상무이사로 재직하면서 포스코의 장가항 공장에서 유지보수 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2004년장가항상해를 세 번째 방문은 지하철 스크린 도어 수주를 위하여 2005년장춘, 광주, 북경 상해 등을 다녀 왔고 네 번째 방문은 북경공항 확장공사 진행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들과 함께 2006년북경을 다녀 왔다.

 

다섯 번째 방문은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의 스폰서인 비자카드사의 초청으로 2008년 8월 10일부터 2박 3일간 베이징 2008 올림픽 게임의 감동을 함께한 부부동반 베이징올림픽 참관여행이었다. 비자카드에서 준비한 아시아나항공 전세기, 5성급 호텔인 베이징 Jiu Hua Resort & Spa 호텔의 전 객실과 편의시설을 임대하였고 2회의 올림픽 게임 관람과 중국의 유명 관광지 방문, 중국 정통 음식까지 포함한 알찬 일정으로 한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되었다. 역시 비자카드의 위용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다. 여행기간동안 모든 편의를 제공해준 비자카드사에 감사드린다.

 

여섯 번째 중국방문은 회갑과 결혼 30주년을 맞이하여 추석연휴기간을 활용한 가족여행으로 2010년 9월18일(토)~9월23(목) 중국 운남성의 성도이며 옛부터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고 언제나 꽃이 만발하였다 하여 '춘성(春城)'이라 불리는 봄의 도시 쿤밍(昆明)을 다녀 왔다.

 

일곱 번째  중국방문은 예술적 감수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겸비한 21세기 문화경영시대에 걸맞는 CEO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10. 9.14. ~ 2011. 1.25. 20주간 수강하고 있는 '한국예술문화CEO아카데미'의 교육의 일환으로 박삼규 원장을 비롯하여 18명이 2010.11.18.부터 4일간 상해에 있는 화동대학에서 중국의 문화, 미술, 풍수 등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방문하였다.

 

여덟 번째 중국여행은 2011년 5월 4일부터 4일간 징검다리연휴를 이용하여 가족이 자유투어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온 장가계이다.

 

아홉 번째 중국여행은 2011년 5월27일 ~5월29일 2박3일간 한양대학교 최고경영자 문화예술 CEO과정생 30명이 참가한  졸업여행으로  한중크루즈여행이었으며 상해를 다녀왔다.

 

열 번째 중국여행은 21011년9월11일부터 9월15일까지 4박5일동안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발해유적을 보기위해 집사람과 함께 다녀왔으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의 모습을 단 한번만에 볼 수 있는 행운도 잡았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천지에 비추어진 풍광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으며,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으며 기를 받고 돌아왔다.

 

자금성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 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체가 사는 자궁과 같은 금지구역이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평방미터이며, 총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 소장되어 있다.

 

천안문광장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 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평방미터이며, 동시에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 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공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을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 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행사 등이 이어진다.

천단
자금성 남쪽에 위치한 천단은 황제가 국가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기원제를 올렸던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천단(天壇) 건축의 특징은 크게 '둥글다'와 '푸른색'으로 정의할 수 있다. 네모난 기단 위에 등근 건물을 올리는데 '땅은 각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오랜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천단의 건물은 짙푸른 색 기와를 시용한다. 하늘의 푸른빛을 기와에 담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화원
'중국 최대의 별궁이자 황실 정원'이라 불리는 이화원은 원래 황실 가족이 덥고 건조한 북경의 여름을 피하기 위한 피서지로 만든 것이다. 이화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곤명호를 따라 북적이는 관광객 사이를 뚫고 나가면 지붕이 있는 야외 복도인 장랑(長廊)을 만난다. 길이 728미터 273칸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긴 회랑으로 문설주마다 총 1만4천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만리장성

북쪽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리장성 역시 중국을 상징하는 유적이다. 만리장성은 민초의 파땀어린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일 때는 전 국민의 3분의 2가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15세가 되면 노역을 시작해야만 했다. 공사 중에 인부가 사망하면 시신을 건조 중인 장성에 묻어 버려서 '거대한 무덤'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만리장성을 찾는 사람들은 가장 많이 여행하는 곳은 북경 북부의 팔달령 지역이다. 베이징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산 능선을 따라 거대한 구렁이처럼 감긴 장성의 다이내믹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조금 힘들더라도 걸어 올라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장성의 줄기와 주변 경관을 보고 느껴야만 제대로 장성을 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

명 13릉
군도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명 13릉(明十三陵)은 1368년부터 1644년까지 명나라를 호령한 13인의 황제가 묻혀있는 무덤 군이다. 살아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황제인 만큼 그들이 집단으로 묻힌 명 13릉은 최고의 풍수명당 자리이다.
그 중에서 3대 황제인 영락제의 능이 가장 크다. 후대 황제들은 선대보다 큰 무덤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 중국사람들은 이곳을 그리 즐겨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카리스마로 세상을 발치에 둔 황제의 무덤이 하나도 아니고 13개나 모여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아서라고.
일반에게 개방된 3개의 무덤중 13대 황제인 만력제의 무덤. 정릉이 대표적이다. 무덤이 안치된 지하궁전이 유명한데 화려한 궁전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제후가 생전에 사용하던 일용품과 옷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 3천여점이 출토되었는데 13릉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곤명여행 2010년 9월18일 ~ 9월23일

 화갑과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추석연휴기간을 활용한 가족여행으로 2010년 9월18일(토)~9월23(목) 중국 운남성의 성도이며 옛부터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고 언제나 꽃이 만발하였다 하여 '춘성(春城)'이라 불리는 봄의 도시 쿤밍(昆明)을 다녀 왔다.

 [영화속 신비한 그곳-토림 곤명/석림/구향동굴 6일] 이라는 주제의 인당 105만원 하는 하나투어 패키지여행으로 16가족이 함께 여행하였으며 특히 눈에 띄는 그룹으로 갈비집을 경영한다는 8쌍의 부부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자칭 술사모라고 자신의 그룹을 소개하며, 인천공항에서부터 술파티가 시작되어 귀국하는 날까지 술에 쩔어 있었다. 운남성의 소수민족들의 전통무용과 생활형태를 춤으로 보여주는 '운남영상가무쇼'를 세계각국에서 온 관관객들이 감동하여 모두가 숨을 죽이고 보고 있는 크라이막스 대목에서 거침없이 야지를 해대는 등의 몰지각한 행동이 돌출하여 급기야 내가 제지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그들을 문제학생이라 부르는 현지 여행가이드 김해월양의 재치와 순발력 덕택에 무사히 큰 트러블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운남성에 대하여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3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될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이곳을 방문하게되면 오히려 이곳의 순수하면서 소박한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된다.  

 운남성의 서북쪽은 드높은 기세의 험주놘 협곡이 펼쳐져 있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옥룡설산, 합파설산, 매리설산 등은 그 기묘하면서 험준한 봉우리로 국내외 빙산등반가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또한 , 서남쪽에 있는 서쌍판납의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기세의 풍경은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의 모습을 빗댄 듯 하며, 동남쪽의 산감 평지에는 합니족이 대대로 경작해온 계단식 밭이 층층이 겹쳐져 있는데, 매년 9월이면 노란색의 유채꽃이 산과 밭을 가득 채워 마치 그 모습이 땅과 하늘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운 듯 하다,  

 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땅에는 백족, 합니족, 태족, 납시족 등 25개 소수민족들이 운남성 인구의 1/3을 차지하며 납시족의 동파문화, 태족의 패엽문화 등 그들의 다양한 신화, 가무, 그림, 음악은 운남의 독특한 민속문화를 만들어냈다. 

 또 운남성은 인류 발원지 중의 하나로서 원모현이라는 곳에서 약 170만년전 원시인 석화도 발견되었다. 성도는 곤명시로서 '춘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4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여 언제나 꽃이 만발하고 산이 푸르며, 이런 자연환경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곤명에 대하여

 중국 남서부 운남성의 성도로 운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와 여행의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운귀고원 중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내 중심부의 위치가 1891m이다. 

 기후가 온화하여 여름에는 혹서가 없고, 겨울에도 혹한이 없다. 사계절이 봄과 같고, 끊임없이 꽃이 핀다고 하여 사람들은 춘성(春城)이라고도 한다. 일년중 언제라도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곤명에는 한족, 이족, 백족, 태족, 합니족 등 여러 소수민족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으며, 명승고적이 매우 많아서 도시 전체에 관광지구가 분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석립과 전지 풍경구를 중심으로 안녕온천리조트 - 석림풍경구 구간을 따라 점차 관광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천하제일가경'이라 불리는 석림에는 '아사마'라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으며 곤명의 전지는 중국의 6대 담수호 중 하나로 '고원명주(高原明珠)'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전지에서 가까운 곳에 각 소수민족의 정수를 농축시킨 '운남민족촌'이 있고, 그 밖에도 대관루, 서산공원 등은 곤명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곤명의 토질은 철이 많이 석여 있어서 빨간색의 적토질이며, 담배나 차와 같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운남의 보이차와 구감차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특히 구감차는 처음 쓴맛을 내다가 뒤에 단맛을 내는 특이함으로 유명하다.

 

곤명의 유래

 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라 칭해졌다.

 

원통사

 원통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원통사는 곤명시에서 가장 큰 불교사찰로 운남성불교협회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당대에 지어진 이 사찰은 곤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찰 중의 하나이다. 이미 1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동시에 곤명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사찰 안에는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에 세워진 좌불상이 있고 대전(大殿) 중앙에는 두 개의 10m 높이의 원주가 있는데, 각각 한 마리의 화려한 용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곤명시 시민들이 불교활동을 하는 주요 사찰 중의 하나로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취호공원

 나봉산 아래 운남대학 정문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비록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늘어진 버드나무와 푸른 호수물이 주요 특색을 이루기 때문에 1900년 초기에 '취호'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원래는 하나의 만이었는데 점차 수위가 내려가면서 나중에 푸른 호수가 되었다. 취호는 크게 5곳의 풍경구로 나뉜다. 호심도(湖心島) 호심정(湖心亭)과 관어루(觀魚樓) 등 청대 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동남쪽은 수월헌(水月軒)과 금어도(金魚島), 동북쪽은 죽림도(竹林島)와 구룡지(九龍池), 남쪽은 호로도(葫瀘島)와 구곡교(九曲橋), 서쪽은 해심정(海心亭)이 있다.

 

서산 삼림공원과 용문석굴

 운남민족촌을 구경하다 보면 그 주변으로 병풍같이 둘러싼 커다란 돌산을 볼 수 있는데 그 산이 해발 2500m의 서산 삼림공원이다. 산세가 미인이 잠을 자고 있는 듯 하여 '잠자는 미인산'이라 불리우며, 누워있는 부처의 모습이라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서산은 그 정상에 있는 용문석굴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용문석굴의 돌계단으로 걸어서 내려오는 코스이다.

 용문석굴은 서산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절벽을 깍아만든 길을 따라가면서 한편으로는 확 트인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간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몸을 매달고 삼청각에서 용문 정상의 도교사원 달천각까지 절벽을 따라 일일이 굴을 파서 1333단의 돌계단을 만들고 그 사이 사이에 사원도 만들고 돌을 파내어 부처님도 만들고 하여간 입이 떡 벌어진다.

 산에는 사원들만 있는게 아니다. 재미난 전설이야기와 그를 재현해놓은 것도 보이는데 이름하여 '효우천' 옛날 이곳에 가뭄이 들었을 때 물을 지어 날랐다는 효자소의 전설과 효우천, 바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가 효자소로 그 샘물 안쪽에 있는 엄마소를 보살피고 있다는데 옆의 정자엔 효자소의 스토리가 적혀 있다. 아무튼 효심 가득한 소머리 한번 쓰다듬자.

 

토림

 첸카이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 장백진 등이 주연한 한 중 일 합작영화 '무극(無極)'의 촬영지. 수백만년에 걸친 지각변동과 유수의 풍화작용에 의해 흙으로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숲 토림(土林). 자연이 만들어낸 흙기둥은 마치 인간이 조각이라도 한 듯이 궁전과 성, 새와 짐승 등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기이한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운남성의 삼림(三林)인 석림(石林), 채색사림(彩色沙林), 토림(土林) 중의 하나이며 각종 영화 및 드라마 로케이션은 물론, 생태관광학습지, 사진촬영지, 4WD 오프로드 체험지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다.

 

금전(金殿 진디엔)

 금전은 곤명에서 동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명봉산 위에 위치한 도교사원으로 소나무로 우거진 산을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금전에 닿을 수 있다.

 사원의 대문은 링링문이라 하며 문의 양쪽 기둥에는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찬양하는 글과 도가사상을 새겨놓은 대련이 있다. 1602년 명대에 지어진 이 도교사원은 무당산에 있는 도교사원의 구리로 만든 건축물을 모방하여 지어, 기와와 기둥, 대들보, 문, 동상 등 모두가 약 200톤 가량의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국가중점보호문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4대 동전(銅殿)/구리로 만든 전당)중 하나로, 보존이 가장 잘 된 동전이기도 하다.

 

석림(石林)

 곤명에서 남쪽으로 120km정도 떨어진 석림. 이족자치현 내에 위치해 있다. 면적이 350km2이며,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이다. 졸기둥이 나무 줄기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는 것이 삼림모양을 이루고 있다. 웅장한 석림은 전형적인 열대 석회암지형으로 현재 해발 2000m 높이이다.

 원래 이곳은 해수면같이 평평했으나, 약 100만년 전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이 일대의 기후 또한 열대에서 온대로 변했다. 석림풍경구는 대소석림(大小石林), 내고석림(乃古石林),지운동(芝云洞), 장호(長湖), 대첩수폭포(大疊水瀑布), 월호(月湖), 기풍동(奇風洞) 7개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대소석림은 석림 관광의 중심으로, '대석림(大石林)'과 '소석림(小石林)'으로 나눠 구분되기도 한다. 이곳은 개발이 비교적 일찍 시작되어서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주마간산으로 흩어보는 데에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구향동굴(九鄕洞窟)

 구향동굴은 일반 가이드북에서조차 많이 볼 수 없는 낯선 곳이다. 심지어 중국인들 조차도 잘 모르는, 미지의 곳이다. 석림으로 가는 도중에 석림을 30km 남겨놓고 버스로 1시간 정도 산속길을 따라 가면 구향동굴로 갈 수 있다. 석림으로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풍경구 중 하나가 구향풍경구이고 이곳에 바로 구향동굴이 있다. 구향동굴로 가는 길에는 운남 여러 민족들의 촌락이 많이 눈에 띄고, 양중해라고 하는 큰 호수가 있다. 양중해라는 곳은 좀처럼 바다를 볼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싶은 마음에 바다해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구향동굴은 발견 후 관광지로 개발해 놓은게 채 5년이 않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너무 인공적이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잔잔한 협곡에서 10인승 배로 레프팅하는 곳이 나오고 간단이 레프팅하면서 협곡을 구경하고 나서 동굴로 들어간다. 레프팅하는 이 협곡은 총 길이가 약 600m로 왕복 약 20분이 소요된다. 레프팅을 마치고 되돌아와 다시 작은 길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높이 80m의 절벽이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동굴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추울 정도로 시원한 동굴 안에는 종유석과 석순들이 연출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곧 이어 이곳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선녀동(神女宮)은 선가(仙家)가 거주하던 동굴부로 원명은 선인동(仙人洞)이다. 이곳은 선량한 선녀가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그 선녀의 모습이 지금의 석화로 굳어져 있다.

 동굴 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300개의 계단이 있고, 가마꾼들이 있어서 흥정해 이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앞에는 리프트가 있어 스키장처럼 타고 올라가면 되는데, 신비한 동굴과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재미있다.

 

운남민족촌

 곤명시 남쪽 교외에서 8km 떨어진 진지(澱池)변에 위치한 대형 민족촌이다. 총 넓이가 83만 핵타아르로 운남성의 26개 소수민족의 정취와 사회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소수민족 문화의 창구라 불린다.

 운남성은 중국의 여러 성 중에서도 소수민족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그 소수민족의 삶을 모두 체험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 값진 체험을 이곳 운남민족촌에서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소수민족들의 건축물과 의복, 전통의식과 음악, 전통춤이 재현되고 있고,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그것들을 관람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야영을 통해 체험할 수도 있다.

 또 민족촌에는 운남성 곳곳에 퍼져있는 운남 각지의 주요한 명승고적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길양 태족의 백탑(白塔)이나 대리의 삼탑(三塔), 목고(木鼓) 등이 그것이다. 또 이곳에서는 각 민족들의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

 

운남영상가무(云南映象歌舞)쇼

운남영상가무쇼는 운남 소수민족들의 전통무용과 생활형태를 춤으로 보여주는 공연으로서 공연중 사용되는 도구들은 모두 소수민족들이 사용해왔던 수공도구를 그대로 옮겨와 사용하고 있으며 배우중 70%는 전업배우가 아닌 소수민족들이다. 전통과 현대무용을 결합시킨 운남영상(云南映象) 가무쇼는 중국 소수민족 문화를 한층 더 깊이 표현하고 있다.

 

 

장가계여행(2011년 5월4일 ~ 5월7일)


인천공항->장사공항->장사 호남성박물관->열사공원->장가계로 이동(1박)->
대협곡->천자산(케이블카)->하룡공원->어필봉->선녀헌화->원가계로 이동->천하제일교->미혼대->후화원->백룡엘리베이터로 하산->금편계곡->십리화랑(모노레일)->장가계로 이동(1박)->보봉호->백장협->황룡동굴->천문산(케이블카)->귀곡잔도->천문산사->리프트카->셔틀버스->천문동->999계단 천문동->셔틀버스->케이블카->장가계->장사로 이동 1박)->장사공항->인천공항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도시 '장가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이 사는 판도라 행성. 영화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아바타'의 형상을 기괴암석과 12만봉으로 이루어진 장가계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보다 훨씬 환상적인 도시 장가계는 중국인들에게는 최대 자랑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무릉원(武陵源)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1334m이고, 풍경구의 면적은 264km2에 달하며 크게 장가계시의 국가삼림공원, 츠리(慈利)현의  삭계곡(索溪谷)풍경구, 쌍쯔(桑植)현의 천자산(天子山)풍경구 등 세 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인접해 있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전체를 다 보려면 최소한 4~5일 정도 소요된다.

 

장가계는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제일의 국가삼림공원 및 여행 특정지역으로서 현재 계속해서 개발, 건설, 발전중인 곳이다. 원래는 대융(大庸)이라는 지명으로 불려왔는데 1994년에 국무원에서 장가계(張家界)시로 승격시켰다.

 

장가계시의 총 인구는 153만명이며, 20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총 인구의 69%가 토가족(土家族), 백족(白族), 묘족(苗族)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토가족이 93만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백족이 10만명, 묘족이 2.7만명 순이다.

 

전체 면적은 9563평방킬로미터로 전국토의 1/1000을 차지한다. 장가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보기드물게 수려한 봉우리와 동굴 외에도 인적이 드문 자연 지리 조건으로 인해 원시상태에 가까운 아열대 경치와 생물 생태환경을 지니고 있다.

 

약 3억8천만년 전에는 이곳은 망망한 바다였으나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올랐다. 억만년의 침수와 자연붕괴 등의 자연적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물맑은 계곡의 자연 절경이 이루어졌다. 연평균 기온은 16도 정도이며, 연강수량은 1200~1600mm 정도이다.

 

장가계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으며, 1982년 9월 장가계가 중국 최초로 국가삼림공원이 됐다. 그후 1988년 8월에는 우링위안(武陵源)이 국가 중요 자연풍경구로 지정됐다. 1992년에는 장가계국가삼림공원, 삭계욕풍경구, 텐쯔산(天子山)풍경구가 무릉원자연풍경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등록되었다. 공원내 삼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97%이상이다.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며, 아직 외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을 방문하고 간 사람들이 장가계의 웅대하면서도 아름답고 기이한 산세에 넔을 잃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학자, 전문가들은 무릉원을 '대자연의 미궁' '지구기념물'이라 부른다.

삭계욕풍경구
삭계를 따라 동서로 펼쳐진 풍경구, 서남으로 삼림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서북으로는 천자산과 이웃한다. 전체면적이 140평방킬로미터에 달하고, 장가계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산과 물 동굴이 일체가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천자산풍경구
천자산의 풍경은 시야가 넓으며 기세가 웅장한 맛을 지닌다. 기이함과 수려함 야성의 미가 삼위일체가 된 곳이 바로 이 풍경구다. 빽빽하게 늘어선 기암봉우리들의 움장함은 숨이 막힐 정도다. 돌봉우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서 마치 붓을 거꾸로 꽂은 것 같은 '어필봉'과 석봉이 구름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선녀와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선녀헌화'는 이 풍경구의 자랑거리. 

   

 장가계국가삼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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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년에 지정된 중국 최초의 국가삼림공원으로 삼림면적이 97.7%에 달할 정도로 숲이 무성하다. 특히 장가계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원가계는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밖에도 높이 300m의 커다란 바위 두 개를 이어놓은 길이 20m의 천연 석고다리인 천하제일교와 혼을 뺏길 정도로 아름다운 최고의 경관을 볼 수 있는 미혼대 등 자연과 하나될 수 있는 많은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다. 풍부한 숲길을 산책하며 삼림욕을 하다보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보봉호와 금편계곡
장가계에는 원가계와 천자산에서 만날 수 있는 기암절벽 외에도 그림같은 보봉호와 금편계곡, 거대한 황룡동굴까지 돌아볼 곳이 많다. 깊은 산속에 있어 물빛이 그윽한 보봉호도 장가계의 빠뜨릴 수 없는 코스다. 여러 모양의 바위에 둘러싸여 아련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 호수에서는 장가계의 소수민족인 토가족들을 만나볼 수가 있는데,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 보봉호를 돌아보고 있으면 여행객의 흥을 돋워주는 노랫가락에 천국이 따로 없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금편계곡은 한 줄기의 깊고 고요한 협곡이 이어진 곳으로 양 옆으로 수풀이 우거져 마치 삼림욕을 하는 듯한 상쾌함을 안겨준다. 수풀너머로는 위에서만 내려다보던 봉우리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길가에는 이름모를 꽃들과 풀들이 여행객들을 반기는 듯하다. 약 6km정도의 산책코스를 가진 금편계곡을 둘러보려면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황룡동굴
무릉원의 제일 동쪽에 있는 삭계욕의 북단으로 7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곳은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이다. 중국 10대 용암동굴중 하나로 '중화 최대의 아름다운 저택' '중국의 국실' 종유동굴 중의 최고'라는 찬사들이 따라 다닌다. 상하 총 4층으로 되어 있고 동굴을 지탱하고 있는 종유기둥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14km에 달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동굴 내에는 1곳의 물고와 2곳의 하류, 3곳의 폭포, 4고의 연못, 13개의 궁정, 96개의 길이 있다. 동굴 속 자연의 경이로움은 보지 않고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럽다.

천문산, 천문산사 그리고 천문동
천문산은 삼국시대 오나라 영안 6년(263년), 고량산에 홀연이 절벽이 열리고, 그 모습이 마치 문과 같아서, 세계적으로 기이한 경관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문동이며, 여기서 그 이름을 얻어 천문산이라 한다. 천문산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제일 긴 최장길이 7455m를 자랑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통해 사계절 내내 천문산을 여행할 수 있고 그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발고도가 1519m에 이르는 천문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케이블카를 30분 정도 타고 정상에서 내려 천문산사까지는 귀곡잔도를 걸어야 천문산사에 갈 수 있다. 귀신들이 걸어다니는 길이라 하여 귀곡잔도라 한단다. 귀곡잔도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고 그 위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놓아 하늘에 둥둥 떠서 걷는 느낌이다. 그 무섭고 아찔한 길을 30~40분 정도 걸어여 천문산사에 도착한다. 천문산사에서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리프트카를 타고 천문산 정상에서 내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구불구불 100구비를 돌아 천문동 주차장에 내려 999계단을 오르면 천문동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종유굴로 해발 1300m, 높이 131m, 너비 57m, 깊이 60m에 이른다. 천문동이라는 이 대자연이 만들어낸 걸작물은 1000m 높이의 절벽위에 걸려있어, 마치 밝은 거울이 높은 곳에 걸려있는 듯, 하늘의 문이 열린 것처럼,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천궁의 궁궐의 신비감이 충만하다. 그 형성원인은 지금까지도 타당한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중크루즈여행

2011년5월27일 12시경 인천항 제2 여객터미널에서 코스타 클래시카호에 승선하여 사진을 찍고 클래시카카드(Classica Card : 선내신분증)를 발급받은 뒤 여권과 중국 입국서류를 맡기고, 객실에 소지품을 갖다놓은 뒤(터미널에서 수하물로 부친 트렁크는 2~3시간 뒤 객실로 자동 배달됨)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선내시설을 둘러보았다. 마치 타이타닉호를 연상시켰다. 오후 3시 제주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배가 커서 그런지 전혀 롤링이 없었기에 언제 출발하였는지 그리고 또 언제 도착하였는지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20대로 돌아가 선내의 다양한 시설, 극장의 쇼공연에서부터 라이브 재즈공연장, 디스코텍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시설을 이용해 보았다. 28일 아침 8시 하선하여 제주관광을 하고 다시 12시경 제주항으로 돌아와 출국수속을 하고  승선하여 상해를 향해 오후 1시경 출항하였다. 이 때부터 또 다시 선내 시설을 이용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무렵 크래시카호에 언제 승선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 공안(경찰)과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선내의 컨퍼런스센타에서 중국 입국수속을 해주어 많은 시간이 절약되었다. 29일 아침 9시경 하선하여 부두에서  Immigration Bus를 타고 40여분간 달려 상해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상해관광에 나섰다. 상해에서 가장 높은 101층의 월드파이낸샬빌딩의 97층에 있는 세계 최대높이의  전망대에서 상해를 조망하고  조계지로서의 흔적이 남아있는 외탄으로 가서 다시 항푸강 바로 건너편의 동방명주를 비롯한 다양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현대적 고층빌딩을 들러보고 점심으로 양고기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고 나서  남경로와 예술가의 거리( ? )를 둘러보고 4시 홍교공항으로 이동하여 오후 6시 출발의 아시아나항공편으로 귀국하였다. 크루즈여행의 묘미는 승선하여 적극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시설을 이용하는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코스타 클래시카(Costa Classica)

선적:이태리, 총톤수:5300톤, 길이:220m, 너비:31m, Deck수:14층

승객수:1680명, 승무원수:619명, 총선실수:654개, 최고속도:20노트,

운항속도:18.5노트, 처녀취항:1991년 (2005년 개보수) 

선내주요시설 : 2개의 수영장, 4개의 하이드로 마사지 자쿠지, 조깅트랙, 휘트니스센타, 스파, 마사지룸, 미용실,  티볼리정찬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뷔페레스토란, 다양한 종류의 바, 콜로세오극장, 갈릴레오 나이트클럽, 교회, 회의실, 미팅룸, 카드룸, 산레모 카지노, 인터넷 카페, 미니클럽스콕(어린이시설), 쇼핑센타,  포토샵 등으로 선내 일부의 유료서비스(유료로 파는 주류와 음료, 미네랄워터, 미니바, 통신비, 마사지와 하루 9불의 봉사료)를 제외하고는 객실이용료, 뷔페 및 정찬 식사, 선내 다양한 이벤트와 쇼관람 각종 프로그램 이욛 등은 모두 크루즈요금에 포함되어 있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선내의 모든 지불행위는 본인명의의 신용카드를 연결 등록한 Classica Card로만 할 수 있다.

 

백두산여행 (2011년 9월11일 ~15일)

인천공항->목단강공항->해림으로 이동-> 한중우의공원->김좌진장군기념관->목단강으로 이동->목단강만가호텔(1박)->목단강조선민족민속거리->발해로 이동->발해상경유적박물관->발해국상경용천부궁성터->흥룡사->동경성->도문으로 이동->중국도문-북한남양국경지대->두만강유람선->연길로 이동->연길장홍호텔(1박)->이도백하로 이동->백두산입구->산문주차장->환승주차장->집차등정->백두산 천문봉->천지->집차하산->환승주차장->장백폭포->백두산온천지대->산문주차장->이도백하로 이동->신달호텔(1박)->용정으로 이동-> 청산리전적지->선봉령->일송정->해란강->대성중학교(윤동주시비->항일독립운동기념관)->목단강으로 이동->만가호텔(1박)->강빈공원->팔녀투강비->우수리강->목단강공항->인천공항 

한중우의공원(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
흑룡강성 해림시에 있는 중국지역 항일역사 기념관으로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독립선열들의 얼을 기리고 민족정신을 통한 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식의 함양 실천 등을 위해 보훈처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후원으로 1999년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의원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에서 만들었고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 들의 일대기와 항일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자료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발해유적지
목단강시에서 남서쪽으로 60km떨어진 녕안현 발해진에 있는 상경용천부(동경성)는 발해의 다섯 개 도시중의 하나이다.(동경용원부-팔연성:연변 훈춘소재, 중경현덕부:연변 화룡소재, 남경남해부:북한 천진시 소재, 서경압록부:길림성 백산소재) 당나라와 신라에 의해 폐망의 길을 걸었던 고구려를 계승해 228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동부, 연해주에 걸쳐 광범위한 영토를 지배했던 발해는 우리나라 영토가 가장 넓었던 역사의 맥을 지켜온 또 다른 축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 후인 서기 698년 당나라가 쇠퇴해진 틈을 타 만주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세력이 규합해 대중상(또는 걸걸중상)과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다. 건국 당시 발해는 고구려의 엣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겠다고 천명하는 등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이를 입증하듯 발해는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 확장에 나서 옛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는 강력한 국가로 발전했다. 발해는 서기 926년1월 기마대를 이끌고 침략한 거란족의 요나라 태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만주의 주인이었다.(일부 학자들은 발해가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황폐화되어 거란족에 의해 쉽게 멸망하였다고 주장한다) 이후 발해 유민들의 부흥운동마져 실패함으로써 그 동안의 한민족의 주된 활동무대의 일부였던 만주지방에 대한 지배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고 한다.

흥륭사
상경용천부 유적지 부근에 있는 절로 원래는 '석불사'라는 발해시대에 지어진 절이었으나, 발해 멸망후 오랜세월 기초만 남은 폐사지로 남아있던 것을 청나라 건륭제 시대에 그 기초위에 전각을 재건한 것. 특기할 만한 것은 발해시대에 세워진 높이 6m의 석등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석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에 기둥돌 아래 위로 세겨진 연꽃무늬 받침돌과 여덟개의 창문이 난 등실의 정교한 조각이 특징이다.  

도문 조중국경지대
길림성 도문,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을 볼 수 있는 곳. 김정구 선생의 눈물젖은 두만강,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하지만 두만강은 예전의 두만강이 아니었다. 상류지역의 광산 등으로 인하여 흙탕물만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땟목을 타고 두만강 유람에 나섰다. 폭은 넓고 좁은 곳이 있겠지만 우리가 땟목을 탄 이곳은 폭 30m의 강이 중국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 비록 땟목은 타고 있었지만 강 자체가 북한지역의 강이기에 우린 북한지역에서 물을 가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2~3m 앞 북한의 풀숲 사이에서 무장하지 않은 북한군 복장을 한 초병이 나타났다. 50m 간격으로 서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니 북한 초병도 가슴으로 손을 가린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가슴이 뭉클하고 찡하였다. 지척에 보이는 북한,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백두산(중국명:장백산) 북파코스는 가장 먼저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 코스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이기도 하다. 북파코스는 이도백하에서 버스로 1시간 가까이 달려 북파산문에서 환경보호차량으로 갈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환승주차장에 도착한다. 난폭운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집차로 갈아타고 다시 30분 정도 달리면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한다. 1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바로 천문봉(해발 2670m), 천지 북면에서 가장 높은 산마루다. 1958년 이 봉우리 북쪽에 백두산 천지 기상관측소를 세울 때부터 기상대를 상징하여 천문봉이라 이름하였다.  
백두산은 동서길이 3.35km, 남북길이 4.85km 너비에 850m 깊이를 가진 거대한 칼데라에 의해 침식된 성층화산 또는 복식화산으로 2500m이상의 봉우리가 16개 있으며 이중 최고봉인 장군봉의 높이는 2749.2m이다.이 칼데라는 서기 969년경 수차례의 화산분출로 인해 형성된 것이며, 물이 차 천지를 형성하고 있다. 천지의 평균 깊이는 213m, 최대수심 384m이다. 천지의 물은 지하에서 솟구치는 샘물(61%)과 빗물(39%)이 유입되어 모아지고 빠져 나가는 곳은 유일하게 북쪽 달문이다. 달문으로 나가 흐르는 물은 68m 높이의 장백폭포를 만들고 송화강, 두만강, 압록강의 발원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의 모습을 단 한번만에 볼 수 있는 행운도 잡았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천지에 비추어진 백두산의 풍광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으며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백두산 온천지대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온천지대는 고산지대에 있어 수질이 뛰어나다. 평균온도가 60~70도, 최고온도는 82도에 이르며, 유황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다량의 무기질과 유화수소도 포함되어 있어 피부병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 온천의 뜨거운 물을 이용하여 달걀과 옥수수를 삶아 팔고 있었는데 맛은 별로였다.

장백폭포(비룡폭포)
온천지대를 지나서 10분정도 더 위로 올라가면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유일한 출구인 달문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로 68m 높이의 웅장함을 자랑하며 일년내내 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용정 대성중학교
백두산 천지를 본 감동이 채 사라지기 전에 일제 식민시대의 아픔이 있는 용정에 들렀다. 용정시는 연변자치주의 수도는 아니지만 가장 조선족 비율이 높은 곳이고 구한말 많은 분들이 만주로 이주할 때 형성된 첫 도시이다. 용정으로 가는 도로변에서 내려서 저 멀리 일송정을 바라본다. 만주벌판 정착시절 일송정이 보이면 용정임읋 알았다고 한다. 식민치하에서 삶이 고단한 백성들이 이주하여 터를 잡고 산 땅이자 독립군에게 자금줄이었던 용정시는 그 시절 발자취는 많이 없어졌지만 조선족 3세인 선생님들이 용정중학교를 지키고 있고 숭고한 독립정신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용정중학교 내에 있는 옛 대성중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기념관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1층은 주로 시인 윤동주 기념관 성격으로 교실을 재구성해 놓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일제시대 항일투사들의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용정중학교에 재직중인 선생님들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출구에는 방명록과 용정중학교에 기부할 수 있는 봉투가 마련되어 있다. 쇼핑을 위해 환전해 온 돈의 일부를 기부하였다.

빈강공원
목단강역에서 쭉 뻗어나온 태평로가 목단강에 의해 막히는 지점에 '빈강공원'이 강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팔녀투강기념비
빈강공원 한 가운데에는 목단강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팔녀투강기념비가 서있다.1938년 10월 일본군을 상대로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운 끝에 포로로 잡히는 것을 거부하고 목단강에 몸을 던져 산화한 항일 게릴라 여성대원 8명(이중 조선족 여성 2명이 포함되어 있음)을 기려 세워진 기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