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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시찰을 갔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포항제철, 이천전기 등을 견학하였는데, 그때 포항제철에서 내꿈을 펼쳐보자’하고 마음 먹었다. 1977년 10월 포항제철 채용시험에 합격하였고 1978년 1월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제철연수원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1976년 복학하여 대학 3학년 시절, 산업시찰을 갔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포항제철, 이천전기 등을 견학하였는데, 그때 ‘포항제철에서 내꿈을 펼쳐보자’하고 마음 먹었다.

 

1977년 10월 포항제철 채용시험에 합격하였고 1978년 1월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제철연수원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 중 선배사원과의 대화에 나오신 공무부 계장과 지창만 과장님과의 만남이 내가 계측제어분야에 종사하게된 계기이다.

 

공무부 계장과에 배치된 호기심 많은 청년은 직무와 관련된 많은 질문을 선배사원들에게 하였으나 답변은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래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자문을 구하니 1979년에 2연주 건설과 관련하여 연수가 있을 것이라는 귀뜸을 해 주었고 나는 KBS 교육방송에서 새벽5시반에 하는 ‘알기쉬운 독일어’ 강좌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1년간을 들었다. 물론 책을 달달 왜워 버렸다.

 

이렇게 한 결과 연수생 선발에 통과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4개월간 계측제어의 기본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독일인들의 근면성과 오스트리아 인들의 사교성을 몸에 익혔다. 이것이 내가 직장생활을 해 나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그러나 2연주 건설이 끝나자 독일어는 생활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1982년 다시 일본어에 도전하기로 하고 당시 선강제어정비과장이셨던 백기남 과장님께 간청을 해 '일본어 심화과정’에 입과하였다.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입과시험이 치뤄지고 당시 과정담당이셨던 주정식 차장님께 호출 당하여 도저히 수준이 낮아 다른 입과생들의 교육에 지장이 초래하니 원소속으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통 사정을 하여 겨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6주간 하루 20시간 가까이를 일본어와 씨름하였다. 물론 이 때도 박성원 교수가 지은 '표준 일본어’ 1. 2권 모두를 외워 버렸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상당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어를 잘 구사할 수 있게된 덕분에 1983년 6월 당시 막 태동하고 있었던 디지털 계측제어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유학을 통하여 배운 것은 정리하여 사내 책자로 출판 동료 사원들의 참고서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광양제철소는 디지털제어(Panelless CRT조업) 방식으로 건설할 수 있었다. 조업과 건설을 병행하면서 1992년까지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의 완성에 기여하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였고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인생의 폭을 넓혀준 4년간의 도쿄연구소, 도쿄지점에서의 주재원 생활을 통하여 수많은 수준 높은 분들과의 교분도 쌓을 수 있었다.   

 

2001년 7월 귀국하여 광양제철소 제선제어정비과장을 다시 하면서 제철소 감각을 익힌 후 부장으로 승진하여 전기계측설비팀장, 전기제어설비부장을 끝으로 2004년 3월18일 27년간 청춘을 바친 포스코를 퇴직하고 포스코의 전기제어분야 자회사인 포스콘으로 옮겨 상무이사로서 포스코를 대상으로 영업과 실행을 총괄하는 포항사업부문장, 광양사업부문장 그리고 공공사업 철도사업 등 대외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사업부문장을 거쳐 인천국제공항 2단계 수하물처리시설사업의 총괄사업관리자를 끝으로 4년간의 포스콘 경영 등, 1978년 1월 6일부터 시작된 포스코 그룹에서의 30여년간의 직장생활을 2008년 2월26일부로 마감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30여년간 포스코그룹에 근무하면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았고, 결혼도 하여 윤택한 가정도 일구었고, 회사의 지원으로 자녀교육도 탈없이 마쳤으며,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과 따뜻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 나의 가장 큰 재산이요 보람이었으며, 이러한 분들의 전폭적인 성원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포스코와 주변 분들의 보살핌하에 성장한 성공한 인생으로서 포스코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30여년간의 포스코그룹에서의 직장생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떠날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포스콘 상무이사로서 공항사업실을 담당하면서 '인천국제공항 2단계 수하물시설사업' 총괄책임자로 일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 인천국제공항의 수하물처리설비 유지보수 용역회사인 '주식회사 아이비티'의 상임고문을 거쳐 대표이사로서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된 점도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회사 '주식회사 아이비티'는 창업진흥원과 미래지식경영원이 공동 주관하고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하는 지식서비스 최우수기업 선정 심사에서 2011년 지식서비스 최우수기업에 선정되어 2011년 4월27일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인증 패와 서비스 품질을 인증하는 KESQ 마크를 받았다. 이 행사는 실력있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발굴해 경영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지식서비스 경영이 중소기업 전반에 확산되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우리회사는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자동화처리시스템(BHS:Baggage Handling System)을 유지 관리하는 포스코ICT의 외주파트너사로,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세계 1700여개 공항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서비스평가에서 인천공항이 6년 연속 세계 최우수공항상을 받게한 숨은 주역으로서, 우리 나라의 서비스와 기술력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관문인 인천공항의  고객 가치를 높히는 핵심 파트를 맡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