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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오스트리아 비엔나공항-짤츠캄머굿(1박)-짤츠부르크(1박)-체코 체스키크롬로프-프라하(1박)-브르노(1박)-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크라코프(1박)-비엘리츠카소금광산-슬로바키아 타트라산맥-헝가리 부다패스트(1박)-오스크라아 비엔나(1박)-비엔나공항-스위스 취리히공항-기내(1박)-인천공항
오스트리아
인구:약821만명 면적:8만3871km2 수도:비엔나 언어:독일어 전압:220V 시차:-7시간 통화:유로((EUR=약1616원 2011.4.13.기준)
체코
인구:약1021만명 면적:7만8867km2 수도:프라하 언어:체코어 전압:220V 시차:-7시간 통화:체코 코루나(CZK=약69.46원)
폴란드
인구:약3848만명 면적:31만2685km2 수도:바르샤바 언어:폴란드어 전압:220V 시차:-7시간 통화:폴란드 줄로티(PNL=약429.37원 2011.4.13.기준)
슬로바키아
인구:약546만명 면적:4만9035km2 수도:브라티슬라바 언어:슬로바키아어
전압:220V 시차:-7시간 통화:유로(EUR=약1616원 2011.4.13.기준)
헝가리
인구:약990만명 면적:9만3028km2 수도:부다패스트 언어:헝가리어 전압:220V 시차:-7시간 통화:헝가리 포린트(HUF=약6.42원 2011.4.13.기준)


예술의전당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구박사님께서 같이 가자며 추천해주신 동유럽 콘서트투어를 갈려고 집사람을 설득하고 있는데, 때마침 TV홈쇼핑에서 동유럽 6개국 광고가 나오는 바람에 먼저 패키지관광을 해보자는 집사람의 제안에 따라 즉석에서 홈쇼핑에 예약을 하였고 4월7일부터 15일까지 8박9일간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중에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친절하게 잘 설명하며 안내해준 자유투어 유럽 전문인솔자 박환석 과장과 현지가이드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오스트리아

짤츠캄머구트
중부유럽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곳으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폭의 그림 같은 곳이며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 76개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들어 내는 장관은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다.
빙하기가 걷히면서 녹은 얼음은 수많은 호수를 형성했다.
자연이 준 경이로운 선물인 소금 이외에 자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은 가장 오스트리아를 대표하고 알프스를 대표하는 곳이며, 알프스의 다른 지역에 없는 동굴속 얼음이 발달한 특이한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 짤츠캄머구트 지역에서 가장 높은 다크슈타인 산에는 전세계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짤츠캄머구트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하면 먼저 중세에 형성된 아기자기한 성 볼프강 마을의 골목길과 건물들을 구경하고 여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였던 호수의 수정 같은 물과 깍아지른 절벽, 그리고 푸른 초원 위에 하나 둘씩 떨어져 있는 그림같은 집을 구경하면서 모짜르트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성 길겐마을에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500미터에 있는 정상에 올라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며 산과 하늘 구름과 호수, 이 모든 것들이 어울어져 잊지 못할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산 정상에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짤츠부르크
짤츠부르크 구시가지의 역사지구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풍스런 음악의 도시

미라벨정원

사치스러운 저택인 미라벨궁전은 17세기 초(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이트'를 위해 세웠던 것으로 당사에는 '알트나우'라 불렀고 그의 후임자 '마르쿠스 시티쿠스'가 이것을 '미라벨 정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당대 최고의 조작가 '라파엘 도너'의 매력적인 대리석 아기천사 계단은 대리석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대리석 방은 모차르트 일가가 대주교를 위해 연주하던 방이었다.
18세기 건축의 대가 '피셔 폰 에를라흐'가 꾸민 정원은 많은 조각상들과 꽃들로 매우 아름답다. 이곳 뒷편에 있는 계단과 정원을 배경으로 영화 '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아이들과 마리아가 '도레미송의' 마지막 부분을 불렀던 곳이다. 정원의 중앙분수를 돌아가며 신화적인 4요소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공기(지옥의 여왕 강탈), 흙(엔터우스를 질식시키려는 헤라클래스), 불(불타는 트로이드에서 자기 아버지를 구하는 이어니스), 물(헬렌을 체어가는 파리스). 이 조각들은 1690년 '모스트'가 만들었다. 중앙분수 옆에는 많은 유럽의 바로크 작품들을 전시한 바로크 박물관이 있다.

게트라이데거리(간판거리)
소금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이곳에 예로부터 많은 상인들이 찾와와 도시를 만들었다. 짤츠부르크성이 있는 묀크스산과 짤자흐강 사이에 활기넘치는 수많은 고급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거리에는 가게의 심벌을 본뜬 연철로 만든 많은 간판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문맹이 많았던 중세의 자취로 간판을 보면 무슨 집인지 알 수 있게 했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건물의 꼭대기 쪽을 보면 이 골목에 있는 건물들의 연대가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시청사(Rathaus)와 모차르트의 생가도 이 거리에 있다.

모차르트 생가
짤츠부르크의 가장 중요한 문화관광지로 게트라이트거리 9번지에 있는 황색 건물로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모차르트는 이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27일에 태어났다. 4살 때 누나가 치는 소곡을 정확하게 따라 쳤고, 5살 때 작곡을 하고, 6살 때 연주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궁중 악사였던 아버지의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어릴 때 작품은 거의 모두가 이곳에서 작곡되었다. 모차르트가 쓰던 바이올린,낡은 피아노와 필사본 악본,그리고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집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408년 '오토 코첼'이라는 유명한 상인이 소유했었다. 1713년엔 '한게나우어' 가족이 소유했다. 1917년 '국제모차르테움협회'가 이 집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잘 꾸며진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돔(대성당)  
780년에 이 자리에 '성 버질'과 '성 루페트'에게 봉헌한 성당이 세워졌다.1200년경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로마네스크 바질리카를 지었다. 지금의 모습은 대주교 '마르쿠스 시티쿠스'에 의해 '헬부른 궁전'을 만든 이태리 건축가 산티노 솔라리'에게 건물을 짖도록 명하였다. 완성은 대주교 '파리스로드론'때인 1621년에 엄숙히 봉헌하였다. 성당은 이태리 르네상스의 말기적 성격을 띤 바로크양식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서유럽 최대의 성당으로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6000개의 파이프오르간이 성당 입구 쪽 위층과 같은 높이 벽면을 따라 있다. 두 개의 탑 옆의 서쪽 면은 밝은 색채의 짤츠부르크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이 두 탑 박공벽에는 '그리스도의 지배'라는 작품과 '모세와 엘리야'의 조각상 등이 있다. 들어가는 정면 입구 쪽에 3개의 청동 문이 있는데 이 현대적인 청동 대문에는 믿음, 소망, 사랑 등의 주제가양각되어 있다. 특히 성당의 내부는 크고 풍부한 대리석과 스티코(치장점토), 풍부한 회화로 인해 인상적이다. 모차르트가 1756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2차대전 때 독일군의 공습으로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 후 전후 복구사업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대성당 정면의 광장에선 매년 7월 말에 '마리아 호프만스틸'의 연극 '예더맨' 공연을 시작으로 짤츠부르크 음악제를 시작한다.

레지던츠광장
레지던츠광장은 시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이 서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무덤이었고 집 몇 채가 있었다.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그것들을 허물고 평지로 만든 다음 자신의 성당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대주교들이 이곳을 지배하는 기간 중 1659년부터 1661년까지 이태리 사람 '토마소 가로나'가 광장에 분수를 만들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로크 분수이다.레지던츠는 12세기부터 1803년 공국(왕자가 다스리는 지역)의 소유가 될 때까지 왕자-대주교 들의 거주지였다. 이것은 12세기 건물 위에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지어진 것이다. 입구 위쪽은 왕자-대주교 '하라흐' 공작의 문장이다.
오페라 세레나데 공연이 짤츠부르크 축제 기간동안 안뜰에서 벌어진다. 안뜰 끝에는 17세기 헤라클래스 분수가 있으며, 그 위쪽에 국가 아파트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것은 말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술관, 전시실, 문화연구소, 임시 대학 총장실을 포함하여 180여개의 방이 있다. 광장 건너편에 있는 새건물은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1592년에서 1602년 사이에 지었다. 이곳 역시 국가 방들이 있다. 건물 오른 쪽 날개부분 건물은 70년 뒤에 지었으며 시 의회가 사용하고 있다

호헨짤츠부르크성
구시가의 남쪽 묀스트베르크 언덕위에 있는 성채로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시의 상징적 존재이다. 역암 위에 세워졌으며 짤자흐강보다 120미터 높다. 성안에는 대주교 의식의 방, 고문실, 1501년에 만든 고딕양식의 마요르카(도자기 일종) 난로, 1502년에 만든 수동식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이 오르간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연주했던 것이다. 

비엔나(빈)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하이든, 말러 등 세계적인 음악가를 탄생시킨 음악의 나라이고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한 행정,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며, 국제도시이다.

쉔부룬궁전
쉔부룬궁전은 프랑스와 앙숙관계에 있던 합스부르크왕조 시절에 베르사이유궁을 능가하는 궁전을 지을 계획으로 시작된 여름궁전이다. 13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던 합스부르크왕가 집권이래 번성기를 누렸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이후 황실의 거주지로써 전통과 화려함을 잘 간직해 오스트리아의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1996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쉔부룬궁전은 로코코양식의 궁전건물로 길이 180m 1440개의 방이 있는데 이 중에서 46개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글로리에테(Gloriette)는 1775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전몰자 위령을 목적으로 쉔부룬궁전 정원 끝 언덕에 세워졌다.

벨베데레궁전
세계 예술과 문화의 수도라 불리우는 비엔나, 시대의 격변기를 살았던 천재화가들의 영혼과 작품이 남아있는 곳, 벨베데레궁전. 그 곳에서 느꼈던 숨막힐 듯한 감동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느낄 수는 없어도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
오스트리아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벨베데레궁전에 자리잡고 있다. 루카스 폰 히데보로(Lukas von Hidebbrough)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프린츠 오이겐가에 위치하고 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비엔나를 구한 오이겐(Eugene)공의 여름별궁이었으며 그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다.
내부는 상궁 하궁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궁은 1723년, 하궁은 1714년에 지어졌다.
상궁은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분리파의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19~20세기 오스트리아 화가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비엔나 분리파를 창시하여 종래의 미술개념의 지평을 넓히는 진보적인 미술운동을 지배했으며,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그들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현대화단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되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동료화가 '에밀 쉰들러'의 딸 '알마 쉰들러'(훗날 '구스타프 말러'. '발터그로피우스'의 아내, '오스카 코코슈카'의 연인이었던 '알마 말러')부터 에밀리 플뢰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인을 품었고, 그 결과 14명의 사생아를 세상에 남긴 비엔나의 카사노바.
당시 학자들에게 악마적 퇴폐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나 20세기 말부터 그의 작품은 재해석되어 다시한번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한때 미술계에 '클림트 바이러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작품은 전세계 모든 이들을 사로 잡고 있다.
번쩍거리는 금박과 은박이 참으로 화려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은 전혀 천박하지 않고 그림 자체가 여러 색을 품은 하나의 보석처럼 느껴졌다. 클림트가 1907년과 1908년에 걸쳐 완성한 클림트가 자신의 예술 속에서 추구하는 여성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키스'는 패턴화된 장식을 통해 하나인 듯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존재인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성의 옷에는 사각형의 장식으로 남성상을, 여성에게는 둥근 원형의 장식을 넣어서 간딘스키가 구멍으로 표현했던 것과 같은 의미로 여성상을 표현했다. 그리고 두사람을 둘러싼 가운은 남성의 심볼을 연상시킨다. 상징화된 성기를 통해 남성의 성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둘은 키스를 통해 하나가 된다. 크림트의 '키스'는 이질적인 두 성의 진정한 화해이다.
그러나 크림트는 이듬해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유디트'에서 이스라엘의 애국 여걸인 유디트를 남성의 목을 벤 요부로 돌변시킨다. 한동안 이 그림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벤 성경속의 '살로메'로 잘못 알려질 정도로 클림트는 유티드를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요부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적장의 목을 벤 유티드를 남성성에 대한 여성성의 승리로 보여진다. 
'키스'가 남성적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해와 존경을 통해 남성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메시지를 주엇다면, '유티드'는 여성적 관점에서 혁명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판매된 예술작품 10개중 3개가 클림트의 작품이며 역사상 세 번째로 비싸게 팔린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I을 구매한 에스띠로데의 회장은 키스를 구입할 수 없으니 가장 유사한 바우어 초상을 1830억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샀다고 할 만큼 세계적인 명화로 알려져 있다.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빼고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

카렌다의 그림 정도로만 보아왔던 '키스', 그 대작을 본 순간 그 동안의 왜설적이라는 감정은 싹 가시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와 온몸에 전율을 느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그림을 응시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체코

체스키크롬로프
체스키크롬로프
는 체코의 남부지방에 있는, 나무수풀사이의 언덕 기숡에서부터 붉은색 지붕의 집들로 구성된, 작고 아기자기한 도시로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작은 마을에 작은 박물관과 기념품숍 펜션 레스토랑 등이 가는 곳마다 자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배낭여행자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다는 이 작은 타운은 이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산태극 수태극의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과 닮은 지형으로 뱀처럼 꼬불거리는 강물과 언덕에 의해서 태극지형을 이루는 자연의 요새에 의지해 건설한 성을 중심으로 발걸음 떼는 곳마다 볼거리가 있는 체스키크롬로프, 지명도 이 지형의 모양에서 나왔다. 체스키는 체코라는 뜻이고 크롬로프는 말발굽이라는 뜻이다. 조합해 보면 체코의 말발굽이라는 뜻이다. 이 도시의 지형을 만든 주인공 블타바강은 유럽의 5개국가를 거쳐 흐르다가 이곳에 오면서 이렇게 독특한 그림을 그렸다. 강물은 영주의 성을 감아돌아 흐르고 다시 마을을 한 바퀴 감아돌며 S자로 흐른다. 흐르는 강변에는 이 도시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케 한 아름다운 중세시대에서부터 르네상스시대의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중세시대로 돌아가 시간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프라하
프라하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꿈의 여행지이다. 유럽 도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프라하를 꼽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낭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건축물이 웅장하고 거리에서는 음악이 흐르는 예술의 도시 프라하는 볼거리면에서도 유럽의 중심이다.

프라하성
프라하가 아름다운 것은 프라하성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성은 왕궁과 교회 등이 다체로운 건축양식으로 건축의 전시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이 여행자들을 끌어들인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성의 야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그 광경을 보기위해 몰려든다. 볼타바강과 백탑의 도시라는 구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프라하성은 프라하 뿐만아니라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므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길이 570m 너비 128m의 프라하성은 9세기부터 왕궁이었던 로브코위츠 궁전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이 궁전 옆에는 비투스대성당이 당당하게 서있다. 프라하성이 거대한 함선이라면 비투스성당은 그 조타실이다, 성 조지바실라카 교회, 성 십자가 교회, 성 조지 수도원 등도 역사와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왕궁의 오른 쪽에 이지르성당이 위치하고 성 비투스성당 우체국 관광정보센타 왕궁 미술관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마티아스 문을 지나면 대주교 궁전과 화랑을 만날 수 있다.

블타바강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에 끼어 두 세력의 힘겨루기의 대상이 되어온 블타바강 유역엔 4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블타바 강변에는 5,6세기부터 슬라브족이 찾아와 정착했고 9세기 말에는 프라하성이 축조되었다. 블타바 강물 색은 갈색인데 이는 광물질이 섞여있고 갈색 조류의 영향이다. 블타바강에는 많은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위에서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건물들이 이 강변을 중심으로 건설되어 있다. 블타바강은 프라하 시민들의 삶의 터전과도 같다.

국립박물관
프라하 여행은 국립박물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라하 중앙역의 오른 쪽에 푸른색 바탕에 황금 줄무늬가 뚜렷한 돔 건물 하나가 있다. 바로 체코 국립박물관이다. 3층짜리 박물관은 인형과 보석 인골 동물 역사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다양한 화석들과 거대한 고래뼈는 감흥을 주기에 충분하다.

바츨라프광장
박물관 앞에 10세기경 적군을 물리치고 보헤미아 공국을 지배하던 바츨라프장군의 청동 기마상이 프라하의 시내 중심거리를 주시하고 있는 비츨라프광장은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곳. 멀리 동상이 보이고 그 양쪽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늘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
아우슈비츠수용소는 폴란드의 오슈비엥침(Oswiecim:옛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수용소인 이 역사의 현장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유럽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유럽 전역과 기차로 연결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폴란드의 외진 곳이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보안성도 갖춰져 있어 선택된 곳이라 한다.
정문의 철문위에 세겨진 독일어 문구 'ARBEIT MACHT FREI'는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으로 강제수용된 유태인들에게 강제노동만이 그둘의 휴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수용소 주변에 큰 포플러나무가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고 이 나무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현장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수용소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는 2중 철조망이 쳐져 있어 탈주가 쉽지 않았고, 일부러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달라붙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단다.
수용소 건물 한동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우수한 민족임을 내세우기 위해 장애인을 우선 학살하였고, 이어서 유태인 거주지역에 독일인이 공격한다고 소문을 내고 피난장소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모이게 했다고도 한다. 가방주인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는 주인잃은 수많은 가방, 신발과 안경들, 면도솔과 강제로 벗겨진 옷가지 등의 그들이 지니고 왔던 모든 물품들, 그리고 그들이 입고 덮었던 수용복과 모포들, 더욱 끔찍한 것은 수용소에 들어오면서 강제로 깍여진 금발의 긴머리와 그것으로 짠 양탄자가 전시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아우슈비츠 열차에서 내려 들어오는 모습에서 강제노동, 생체실험, 시체소각에 이르기 까지의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말해주는 사진이 걸려있고, 복도 벽면에는 수많은 수용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간이재판을 하고 벽에 세워놓고 총살했다는 사형장을 '통곡의 벽'이라 불렀고 독가스실 옆 교수대는 유태인들을 처형하는데 사용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이곳 수용소장이 도망가다 잡혀 이 교수대에서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유태인들을 독가스실 안에 가두고 천장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독가스통을 위에서 넣어 질식시켜 죽였는데 여기저기 고통을 참지 못해 손톱으로 벽을 긁은 흔적이 깊게 남아있었고 바로 옆에 가스실과 통하는 시신소각시설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수용소는 전체 28동의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수용되었던 연인원 약 150만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의 대학살의 현장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비르케나우수용소(제2 아우슈비츠수용소)가 있고 면적이 54만평으로 아우슈비츠수용소의 20배 규모이다. 이곳의 입구를 '죽음의 문'이리 부르며 열차선로가 끝나는 부분에 현재 '국제위령비'가 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 후반은 이 비르케나우수용소를 무대로 찍었다.
우리들은 그들이 저지른 만행과 잔학상에 한동안 말문이 막혔고 전시시설에 적혀있던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이 문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크라코프(크라카우)
폴란드 크라코프(Krakow)의 중앙시장 광장은 사교장 역할을 했던 곳으로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니스의 산마르코광장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넓은 광장이다. 넓은 광장 주위에는 옛 크라코프 귀족들의 저택이 줄지어 있다. 광장 중앙건물은 직물회관으로 고딕양식에 르네상스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며 1층에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수많은 잡화점들이 있으며 2층에는 18~19세기 폴란드 화가들의 대표작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모마리아성당의 첨탑의 높이는 각 81m, 69m이다. 이 첨탑에서 나팔수가 매 정시마다 나팔을 불다가 뚝~끊기는데 그 이유는 타타르족이 쳐들어 왔을 때 나팔을 불다 목에 화살이 꽂혀 죽은 파수병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비엘리스카소금광산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남동쪽으로 13km 거리에 있는 비엘리츠카는 암염이 생산되는 곳으로 약 10세기에 만들어진 소금제조장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197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여기는 암염이 많아 지하 100m 정도에 전시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반드시 폴란드 안내인 1명의 동행하에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장에는 비엘리츠카의 역사와 소금을 파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으며 그 안에는 암염으로 만든 수많은 조각품과 예배당도 있다. 54층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35m로 378개의 나무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지하 갱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크라코프에서 공부하던 중 이곳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그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1973년에 만든 코페르니쿠스 기념상이다. 
소금광산에서 소금을 캐다보면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이 메탄가스는 공기보다 가벼워 천장에 있는 홈에 모여있다가 불꽃을 만나면 폭발하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배테랑 광부가 봉끝에 불을 붙여 조심스럽게 천장에 모여있는 메탄가스를 태워 제거한 뒤 소금을 캤다고 한다.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말이 동원되었는데 어린 새끼 때 안고 데려와 동굴 속에서 키워 일을 시켰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해 눈은 퇴화되고 죽은 뒤 시체를 조각내 밖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광부들의 오랜 끈질긴 노력으로 지하 100m 지점에 길이 55m, 폭 12m에 이르는 지하공간을 만들어 그들의 수호신인 '킹카공주'의 이름을 붙인 장엄한 킹카성당이 있다. 성당에는 정면에 있는 제단이나 촛대는 물론이고, 갖가지 조각상과 양쪽 벽면의 부조 벽화까지 모든 것을 광부들이 광산에서 사용하는 도구만으로 만든 것들이다.
소금광산에서의 사진촬영은 사진촬영권을 사서 몸에 부착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사진 촬영권은 3유로이다.

슬로바키아

타트라국립공원
타트라(2663m)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에 걸쳐 있는 알프스산맥 중의 하나로 총 면적의 3/4이 슬로바키아에, 나머지 1/4이 폴란드령에 속한다. 194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타트라국립공원은 삼엄한 보호로 인해 현재 수많은 희귀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때묻지 않은 자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헝가리

헝가리는 중부유럽의 동쪽, 다뉴브강의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를 북쪽으로, 서쪽에는 오스트리아, 동북쪽은 우크라이나, 동쪽으로 루마니나, 남쪽으로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사이로 서쪽의 Buda지역과 동족의 Pest지역을 합친 도시로 인구는 약 200만명이다.
파리, 프라하와 함께 3대 야경
으로 꼽힌다는 부다페스트 야경을 배를 타고 관람하였다. 과연 3대 야경에 들어갈만 하다. 그 아름다운 야경을 소형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다페스트의 상징 '부다왕궁'
헝가리는 몽고군의 침략 이후 13세기 중반에 부다(Buda)의 언덕에 성을 쌓고 궁전을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이전했다. 부다왕궁은 15세기에 들어와 헝가리 부흥기인 마차시1세 때 르네상스양식으로 개축했으나 16세기 투르크군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 17세기 때에는 합스부르크가 지배하여 다시 재건하였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것은 1950년대 이후이다. 아직도 북쪽 벽면에는 2차대전 당시의 상흔이 남아있다.파란만장한 헝가리 역사와 함께 부다왕궁은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부다왕궁의 일부는 대통령 집무실과 미술관, 공연장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운좋게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방문하여 의장대를 사열하는 현장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 '어부의 요새'와 '마챠시교회'
부다왕궁에서 언덕을 조금 오르면 마챠시교회를 먼저 만나게 된다. 모형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부의 요새와 마챠시교회는 한 장소에 있다.
마차시교회
는 벨러4세 때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건설되었다가 14세기에 와서 현재와 같은 고딕양식으로 교체되었다. 마챠시왕 때 80m의 고딕탑이 세워지면서 개명된 마챠시교회는 16세기 때 투르크군의 침략으로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었다가 18세기에 와서야 기독교 교회로 회복되었다. 교회 내부는 아름다운 색채로 칠해져 있으며 황금빛 주제단은 헝가리 교회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
어부의 요새는 18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자발적으로 이 요새를 방어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7개의 고깔탑은 헝가리를 건국한 7명의 마자르족을 상징한다. 헝가리가 국난에 처했을 때 어부들이 자발적으로 외적을 방어하였던 애국정신의 상징이다.

겔레르트언덕

겔레르트언덕은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해발 235m의 바위산이다. '겔레르트'라는 이름은 이 언덕에서 순교한 이태리 선교사의 이름이다. 겔레르트언덕에서는 '슈타델라 요새'도 볼 수 있는데 이 요새의 최초의 용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헝가리 독립을 막기 위해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지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립을 기념하는 뜻에서 모스크바 쪽을 향하여 14m 높이의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영웅광장
영웅광장은 1863년 헝가리 건국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다. 중앙에 있는 높이 63m의 기둥에는 천사장 기브리엘이 서있고 주변에는 마자르 족장 이르파드를 비롯한 여러 부족장의 기마상과 기둥 사이에는 국왕과 근대 지도자 14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