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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남부에 있는 나라, 위치 : 유럽 중남부, 면적 : 30만 1277㎢, 인구 : 5789만 2000명(2001), 인구밀도 : 192.2명/㎢(2001) 수도 : 로마,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이탈리아어, 통화 : 리라, 환율 : Lit 2,126 = 1달러(2001.9) 1인당 국민총생산 : 2만 170달러(1999)


이태리 여행은 1979년 10월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VOEST ALPINE 에서 포항제철소 2연주공장 건설을 위한 기술연수 중에 틈을 내어 윤경한씨 등 4명과 같이 여행을 하였다. 린츠를 출발하여 비엔나를 거쳐 오스트리아와 이태리의 국경을 넘어 베니스로 가기 위해 유럽특급에 몸을 실었다. 지금 역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국경에 있는 이태리측 출입국관리소의 직원이 비자가 없어 못들어 간다고 우기는 바람에 열차에서 내려 출입국관리소 사무실에 가서 한국과 이태리 사이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는 내용의 비자협정을 확인시켜 주고서야 우리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열차는 떠날 수가 있었다.
유리제품·보석·대리석 세공·도자기·피혁제품·레이스직물 등의 수공업품 제조가 주요 산업이고 섬들은 길이 좁고 수로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차는 통행할 수 없고, 길이 약 10m, 너비 1.5m 정도의 곤돌라가 교통수단인 수상도시 베니스, 정말 환상적인 도시였다. 첫인상은 반도여서 그런지 우리와 비슷한 국민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온종일 산마르크대성당, 두칼레궁전 등 베니스 관광을 하고 밤늦게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싫었다.

 

아침 로마역에 도착하니 여행사와 호텔 직원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호객꾼을 따라 여행사로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당신네 대통령 죽었단다. 황당하여 몇 차례 다그쳐 물으니까 분명히 뉴스에 나왔다고 한다. 여행사에서 전화를 빌려 이태리 대사관에 확인하였으나 그런 사실이 없다고 시침을 때었다. 그래서 관광버스를 타고 바티칸과 로마를 구경하였다. 테베레강 오른쪽 연안에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교황청 소재지인 바티칸시국, 베네치아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 로마.도시 전체가 문화재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무렵 여행사로 돌아와 이번에는 바티칸대사관에 전화를 해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상황은 아니란다. 그러나 걱정이 앞서 3대미항중의 하나인 나폴리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태리 첫번째 여행은 1979년 10월26일 경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 여행은 이태리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측정단체연합(IMEKO) 13차 총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기위해 1994년 9월 5일부터 7일간의 출장이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를 이어주는 철도 도로 교통의 요지이며 상공업도시인 토리노.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 피아트(FIAT)가 있고 자동차 생산을 거점으로 금속·기계·전기·화학·섬유·의복 등이 발달하여 이탈리아 제 2 의 공업도시이다. 특히 자동차 생산은 이탈리아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자동차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피아트박물관과 피아트연구소, 그리고 예수님의 수의가 보관되어 있는 두오모(대성당)가 인상적이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 (Duomo)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 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인 밀라노의 두오모는 14세기에 건축을 시작, 1951년에야 그 모습을 완전히 갖추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135개의 뾰족한 첨탑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 맨 가운데 가장 높은 첨탑의 끝에는 황금빛의 성모마리아가 서 있는데, 밀라노 사람들이 마돈나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두오모는 정면보다도 측면의 모습이 더 압도적인데, 이는 장식적 측면을 강조하는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에 따라 측면 벽과 첨탑 꼭대기를 장식한 1245개 성인상의 모습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두오모의 규모도 엄청나지만 두오모 옥상 역시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는데, 마치 운동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밀라노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웅장한 외관과 더불어 내부 역시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인데, 45m에 달하는 천정까지 이어진 두꺼운 기둥들이 내부를 5등분 해 거대한 십자가 구조를 이루고 있어 더욱 광대해 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기둥에 비추어지는 아름다운 빛이 어우러져 한층 더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밀라노 패션의 거리 (Monte Napoleone)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구경하고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쇼핑가를 천천히 산책하고 나면, 1호선 산 바빌라 역 옆쪽에 또 하나의 밀라노 명소가 있다. (3호선 몬테 나폴레오네 역에서 하차해도 된다.)
품 거리로 일컬어지는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인데, 이태리의 유수한 의류, 보석 명품들의 본점은 물론, 세계의 명품샵이 산재해 있는 거리이다. 이 지역은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를 중심으로 산 안드레아, 델라 스피가 거리 등에 걸쳐 수십 개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여름, 겨울 정기 세일 때에는 상점 밖에 줄 서 있는 많은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라 스칼라 (스칼라극장 Teatro alla Scala)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음악도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일명 라 스칼라 La Scala)은 세계 오페라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세계 최초의 민간 극장으로서, 1778년 개장한 이래 현재까지 최고의 명성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 비엔나의 국립 오페라 극장과 더불어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일컬어진다.

스칼라 극장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다가 1946년 재건되었고, 최근에도 보수 공사를 위해 장기간 문을 닫았다 2004년에 재개관 했다. 1778년 8월 3일 개관 당시 이탈리아의 작곡가 살리에리(A. Salieri)의 작품 ""Europa Riconosciuta""가 무대에 올려진 이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의 여러 작품이 초연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오페라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으로, 지금까지 그 명성과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1946년에 재개관할 당시에는 유명한 이탈리아의 지휘자 토스카니니(A. Toscanini)의 지휘로 화려하게 문을 열었으며, 그후 V.사바타, T.세라핀, R.무티 등 유명 지휘자가 음악 감독으로 역임했다.

총 3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의 내부는 붉은 카펫에 웅장한 샹들리에로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오페라의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오페라 박물관도 마련해 놓았다. 오페라 상연은 12월 초에서 7월 초까지 이어지며 나머지 기간에는 콘서트와 발레가 주로 무대에 올려진다. 

베니스 산마르코 교회 (Basilica San Marco)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가 교회(정확히는 대통령의 예배당). 11세기의 비잔틴 양식으로서 내부에 성 마르코의 유골이 납골되어 있다. 파라 도로(금으로 된 재단 장식)와 보물고를 놓치지 말고 볼 것.

산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일찍이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롱'이라고 극찬했다는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의 단 하나뿐인 광장임과 동시에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모든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비둘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곳이 이곳 뿐이라고 한다. 비둘기들이 하도 날아다니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들을 온몸 가득 안고 먹이를 주는 외국인들의 재미난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이곳을 방문한 즐거움 중 하나이다. 베네치아가 해상 공화국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시기에는 이 곳에서 행진과 축제 예식이 거행되었고, 평상시에는 행상을 하는 외국인들과 상인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지금도 베네치아의 가면 축제가 열리는 때면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축제를 즐기는 각국의 관광객들이 한 가득 이곳으로 모여든다.

광장은 삼면이 열주로 가득한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의 다른 광장들과는 달리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길게 늘어선 양쪽의 건물에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카페와 살롱들이 자리하고 있고, 가운데 '나폴레옹의 날개'라는 뜻을 가진 '알라 나폴레오니카'라는 이름의 건물에는 나폴레옹이 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에는 16~18세기에 번영하던 베네치아의 역사와 예술, 풍속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치비코 코레르 박물관(Museo Civico Correr)'이 들어와 있다.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치하던 '도제'(총독의 명칭)의 공식 거처임과 동시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의원회가 열리는 베네치아 정치의 중심지였던 두칼레 궁전. 핑크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관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1340년에 대의원 회의실로 지어졌으나 화재로 크게 손상되어 16세기부터 재건을 시작했는데, 이때 처음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고, 궁전을 장식하고 있던 베로네세의 그림 등을 포함한 많은 미술작품도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건물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모습을 띠게 되었고 16세기 베네체아 파의 거장들이 궁전의 내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 중 대의원 회의실에 있는 틴토레토의 <파라다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로, 화재로 불타버린 이 곳을 하늘의 힘으로부터 지켜주십사 하는 내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궁전 내부로 오르는 거인의 계단은 도제의 취임식이 이루어지던 곳으로, 계단 꼭대기에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가를 상징하는 사자상이 놓여 있다. 궁전의 맨 꼭대기에는 죄인을 재판하는 방이 있는데, 베네치아가 배출한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카사노바도 이곳에서 판결을 받고 궁전과 감옥을 잇는 탄식의 다리를 건넜다 한다.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어둡고 축축한 감옥으로 끌려가는 죄인이 외부 세계와 이별을 고한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플로렌스 두오모 성당 (Santa Maria del Fiore)

소설과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헤어진 연인의 10년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배경으로 등장해 연인들의 성지가 되어버린 피렌체의 두오모.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을 가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에 걸맞게도 두오모의 정면은 분홍색, 흰색, 초록색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처음 두오모와 마주하게 되면 상상 외로 거대한 모습에 놀라고 만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이 성당은 13세기 말에 공사를 시작해 정면의 장식이 19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만큼 내부는 너무 넓다 못해 썰렁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피렌체의 두오모를 대표하는 것은 바로 갈색의 커다란 돔인데, 높이가 무려 106m로 꼭대기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무려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 돔은 피렌체 시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브루넬레스키가 만들었다 하여 그의 이름을 따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다. 돔의 큐폴라 내부를 장식하는 그림은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으로, 돔을 오르내릴 때 감상할 수 있다. 돔에 오르는 계단은 돔의 경사를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파르고 좁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마주칠 때면 벽에 바짝 붙어 비켜주야만 한다. 돔 꼭대기에 오르면 피렌체 시내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해 질 무렵에는 노을을 받아 온통 갈색으로 빛나는 피렌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 무대였던 곳. 예술의 도시에 걸맞게, 광장에는 많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피렌체 중심가에는 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쾌한 광장 중 하나로, 벤베누토 첼리니와 다른 조각가들의 화려한 작품이 늘어서 있다. 이 광장은 시청과 함께 하고 있는데, 이 시청은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단테의 생가 (Casa di Dante)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생애를 표현해 주는 그림과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언덕 (Piazzale Michelangelo)

중앙에 미켈란젤로의 커다란 '다비드상'이 서있는 광장으로 시내의 동남쪽에 있는 낮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에 의해 둘로 나뉜 피렌체의 장미색 거리와 두오모의 쿠포라가 인상적이다. 피렌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폼페이 고대유적지 (Pompei)

AD79년 8월24일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7m아래 지하에 묻혀버렸고, 15,000여명의 주민이 사망하였다. 폼페이는 8개의 게이트와 3km의 성곽으로 둘러있고, 성곽 안은 정비가 잘 된 도로망을 갖춘 도시였다. 포룸 광장과 사원들,스타비안스파,극장과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이 있다. 도로망은 여전히 자갈이 깔려있고, 재앙 전 주민들의 생활을 가늠케 하는 호화스러운 저택과 프레스코화, 조각들이 가득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비밀 의식을 묘사한 벽화도 있다.

바티칸 박물관 (Musei del Vaticano)

시스티나 예배당과 라파엘의 방, 세계 최고의 미술 컬렉션이 있다. 다양한 미술품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로 유명한 걸작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직접 보고자하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 광장 옆길로 돌아가면 위치해 있다.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청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된 이 곳의 대부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이다.

성 베드로 성당 (Basilica di Pietro)

324년 성 베드로의 유해 위에 세워진 성당을 16세기에 재건, 120여년 만에 완성한 세계 최대의 가톨릭 성당. 돔과 십자 형태의 광장은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가, 광장과 성당을 잇는 열주랑은 베르니니의 설계로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열주랑은 4열로 되어있는데, 광장 바닥에 새겨진 청동의 동그란 표시에 서면 열주가 겹쳐지면서 모두 일렬로 보이는 신기한 모습이 연출된다. 성당 정면 꼭대기에는 예수를 비롯한 세례 요한과 11제자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예배당 중앙의 문은 청동의 문이라 불리는데, 베드로의 순교를 주제로한 부조 장식이 압권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으로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가 하얗게 빛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훼손방지를 위해 설치한 유리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성당 중앙 맨 안쪽에 위엄있는 모습을 갖춘 교황의 옥좌는 '발다키노'라고 하는데,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지시를 받고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이 옥좌 아래에 베드로의 유해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옥좌를 지나 왼편에는 돔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발코니까지만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돔 꼭대기까지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야 한다. 하지만 돔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티칸의 모습은 마치 달력의 사진을 보는 듯한 홍홀한 이미지를 선물한다.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할 때에는 복장에 주의해야 하는데, 민소매나 여성의 경우 짧은 치마나 바지, 남성의 경우는 반바지 차림을 한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

시스티나 소성당 (La Cappella Sistina)

1475년 바티칸의 소성당으로 건축되어 1483년 완공되었다. 규모는 예루살렘 성전과 비슷하며 대리석 벽을 사이에 두고 성직자석과 신자석으로 구분된다. 천정은 반원형 형태이며 성당의 이름은 교황 시스토4세에 의해 명명되어졌다. 이 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벽화 최후의 심판과 천정화가 있다. 또한 교황선거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당 내 벽화에 설계사와 건축가의 모습의 등장과 로마시대 초대 그리스도 교회와 전통적인 중세기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시원한 물줄기로 관광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로마의 대표 관광 명소.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갑자기 물소리와 함께 커다란 분수가 나타난다. 18세기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분수는 폴리 궁전의 한쪽 벽면을 배경으로 바다의 신 트리토네가 이끄는 마차가 파도를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트레비라는 이름은 셋을 뜻하는 '트레'와 거리를 뜻하는 '비아'를 합친 말로 '세 거리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 분수의 물은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로마 시내에 수도를 공급하는 '처녀의 수로'를 통해 들어온다.

바다를 상징하는 넓은 수반속에는 관광객들이 로마에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던진 동전들이 가득 차 있는데, 이 동전들은 모두 로마의 빈민구제를 위해 쓰인다고 한다.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으로 왼편 어깨를 넘겨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속설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진실의 입 (Bocca della Verita)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 그 손을 잘라간다는 전설이 있는 해신 트리토네의 얼굴 조각.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은 원래는 고대 로마의 하수구 뚜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테베레 강변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입 안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기에 바쁜 곳이 되었다.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틴 성당은 무려 4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지금은 진실의 입의 인기에 눌려 바닥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과 성가대석 등의 훌륭한 내부장식들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시간이 된다면 성당 안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성당 외부의 우아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높은 종탑도 이 성당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의 입과 함께 사진을 잘 찍으려면 오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진실의 입이 서쪽을 등지고 있어 오후가 되면 역광을 받아 까맣게 나오거나 반쪽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손을 넣고 '꺄악' 소리를 지르는 포즈도 잊지 말자.

콜로세움 (Colosseo)

로마의 상징이자 이탈리아의 상징인 원형경기장. 7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때 건축을 시작해 티투스 황제때 이르러 약 10년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치고 최장지름 188m, 높이 57m의 4층 건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최대 수용 인원은 약 5만 명으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경기장이었는데, 후에 거대하다는 뜻의 Colossal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바뀐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는 3층까지 남아있고 1층은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육중한 도리아식으로, 2,3층은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지어졌다. 1층의 아치는 모두 80개인데, 이는 5만의 관중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콜로세움에서는 물을 가득 채워 전함을 띄운 뒤 수중전투를 재현하거나 검투사와 맹수들의 혈투를 하는 등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황제들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많은 볼거리들을 이용해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콜로세움 자체를 황제의 권위를 드높이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귀족들의 지정석이 있던 흔적들과 경기장 안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이는 황제 전용석의 위치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마가 점령했던 거의 모든 지역에 원형경기장의 유적이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콜로세움의 2층에 올라서면 아치 사이로 포로로마노의 모습이 들어오고, 아직도 지하유적을 발굴작업 중인 현장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발굴된 지하유적은 경기를 위해 맹수들과 검투사들이 대기하던 대기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대전차 경기장 (Circo Massimo)

로마제국의 가장 크고 오래된 경마장으로 약 30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2두 전차나 4두 전차의 경주를 했던 곳으로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순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