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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37만 7835㎢, 인구는 1억 2734만 7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337명/㎢(2002)이다. 일본어로는 '니혼' 또는 '닛폰'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한서(漢書)에서 수서(隋書)까지 '왜(倭)' 또는 '왜국(倭國)'으로 기록하여 왔으며, 한국에서도 일찍이 그렇게 불러 왔다.

 

어느날 모두가 내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제강제어 계장에 다른 분이 인사명령지상에 올라 있었다. 모두가 부장에게 확인해 보라고 부추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김신정 부장님을 찾아가 연유를 물어 보았다. 당신은 공부를 더 해야 해. 보직을 받아 노무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면 누가 제2제철 건설을 이끌어간단 말인가. 호되게 질책을 당하고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1982년말 사내에서 공모하는 해외유학생 선발고시에 합격하여 1983년 디지털계측제어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을 떠났다. 산학과정으로 일본 유수의 전기회사인 요코가와전기에서 이론과 엔지니어링 실무를 익혔다. 혼자서 왔으니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마음먹고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저녁 12시까지 공부하고 금요일 저녁부터는 문화체험을 하기로 다짐하고 끝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그해 8월 일주일간의 하기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일본여행을 하였다. 키티큐슈에 내려가 포항에서 탈가스설비를 건설하면서 친해진 신일본제철의 전기계잘설계부장을 만나 야와타제철소 견학을 신청하였으나 거절 당했다. 부메랑효과를 염려하여 포항제철 직원들에게는 신일철의 제철소를 견학시켜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쿠도씨 등 몇몇 친한 신일철 직원들과 후쿠오카의 이자카야(선술집)에서 술로서 회포를 풀고 일본의 고도인 나라, 교토를 구경하고 도쿄로 돌아와 후지산 등정을 하였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궁이 있는 닉코를 끝으로 여행을 마쳤다.

 

내가 거처했던 곳은 도쿄도 무시시노시에 있는 요코가와전기의 연수생숙소인 무사시노롯지였다. 외국인 등록을 하였기 때문에 시청에서 시 체육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시민들과 어울려 열심히 뛰었다. 그 덕분에 무사시노시 나카쵸에 있는 주민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모두를 예의 바른 한국 젊은 청년을 좋아했다.

 

박성원교수가 지은 표준일본어가 아주 오래된 책이어서 존경어와 겸양어 표현이 많았고 나는 그것을 다 외워버렸기에 일본 젊은이들과는 달리 자연히 존경어와 겸양어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요즘 보기 드문 예의 바른 젊은이로 통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마을 주민들이 식당을 전세내어 환송회를 해 주었다. 이것을 본 요코가와전기의 친구들은 지금도 날 전설적인 인물로 얘기한다.

 

두번째 여행으로 광양 열연 조업대비분야 연수를 위해 1986년 4월 쿠라시키시에 있는 카와사키제철 미즈시마제철소에 3주간 머무른 일이고, 세번째 여행으로 광양제철소 고로 노정장입물 분포측정장치인 Microwave Profile Meter 연수를 위해 카와사키제철 치바제철소에 2주간 머무른 일이며, 네번째 여행은 일본 철강사의 전기 계측 컴퓨터분야의 정비업무 실태조사를 위해 일주일간 도쿄, 카시마, 미즈시마, 케이힌 등을 방문한 일이다.

 

1979년 7월부터 2001년 6월까지 4년간 포스코 도쿄연구소로 발령이 나 가족과 함께 도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이 IMF관리하에 있었기 때문에 주재수당이 삭감되어 생활에 어려움을 격기도 하였으나 우리는 가족여행을 많이 하였다. 일본의 고도인 나라, 교토, 온천휴양지인 시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닉코, 히타치전기가 있는 히타치, 혹가이도, 키타알프스, 오카나와 등 여러 곳을 여행하였다.

 

4년간 도쿄에 주재하면서도 업무와는 무관한 지역주민과도 가깝게 지냈다. 진공관오디오 자작과 음악감상 취미가 이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도쿄 신주쿠의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째즈바 Gate One에서 많은 Musician을 만날 수 있었고 게이트완을 중심으로 저와 친근하게 지냈던 다카다노바바 지역주민들이 2001년 5월 골든위크 연휴 마지막 날 휴일임에도 문을 열어 송별연을 성대하게 열어 주었다.

 

섯번째 여행은 2003년 7월 21일부터 7월25일까지 광양제철소 천정크레인을 무인화하기 위해 기술조사차 도쿄에 출장을 간 일이다.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일본여행,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 참으로 나에게 수많은 좋은 추억을 남겨 주었으며 이후 매년 10월 아키하바라에서 열리는 '진공관오디오 페어'도 참관할 겸 지인들과의 교분을 지속하기 위해 3박4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1968~1969년 사회가 혼란하여 데모가 빈발하던 시대였기에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취소되어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록 60을 넘긴 나이이기는 하지만 수학여행의 추억은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광주서중일고45회 동창회, 특히 재경동창회를 꾸려나가고 있는 김영민 회장, 편무은 총무, 그리고 광주의 홍기문 회장을 비롯한 몇몇 리더들의 제안에 따라 77명이 동참하게 되었고 졸업 40주년 기념 '가고싶었던 수학여행 추억만들기'란 테마로 2010.11. 5.(금) ~ 11. 7. (일) 2박3일동안 일본 큐슈지방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11월5일 새벽 5시40분, 서울역에서 57명의 동창생들이 모여 6시에 출발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특실을 전세낸 덕에 약간 취기가 오른 소란한 남자들의 수다가 한창 진행되던 8시반 부산역에 도착, 광주에서 내려온 20명의 동창생들과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합류하여, 77명이 동창생 김창중 친구가 운영하는 쾌속여객선 코비호를 타고 10시에 하카다항으로 출발하면서 수학여행은 시작되었다. 코비호의 대보해운 대표이사 김창중 회장도 이번 수학여행에 동행하니 코비호 선원들도 긴장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12시 55분 하카다항에 도착하여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전세버스 2대에 나눠타고 학문의 신(왕인박사의 제자)을 모시는 다자이후텐만궁을 관람하고 300년 전통의 최고급 여관인 츠에타테의 히젠야에 여장을 풀고 유카타로 갈아입은 후 노천온천 키소노유에서 온천을 즐기고, 일본 전통요리인 카이세키요리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다다미방의 대식당에 유카타를 입고 77명이 모여 줄을 맞춰 독상을 받고 있는 모습이 마치 조폭들의 보스 회의를 연상시켜 주었다.

 

11월 6일 아침 일찍 온천욕을 한 뒤, 뷔페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직도 화산활동이 진행중에 있는 세계 최대의 복식화산 아소산으로 향했다. 쿠사센리, 코메즈카를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분화구(1323m)에 도착하여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 아득히 멀리 보이는 분화구를 내려다 보니, 하와이에서 보았던 일반 활화산 분화구의 검붉은 색 용암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아름다운 초록색, 에머랄드빛의 용암이 넘실거리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소산의 감동을 뒤로 하고 유후인으로 향했다.

 

호수바닥에서 차가운 샘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솟아오른다고 하여 유명해진 유후인의 긴린호수, 아무생각없이 보면 조그마한 연못(웅덩이)과 여기에 연결된 개울에 불과한데, 테마를 만들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관광지화 하고 상업화 하는 일본 지자체의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금상을 받은 고롯게도 하나 먹고 야생원숭이 집단서식지로 유명한 타카사카야마로 향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수백마리의 야생 원숭이때가 3그룹으로 나뉘어 나름대로 깨지지 않는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 그룹은 퇴출되고 두 그룹 만이 남아 있으며, 한그룹은 숲에 들어가 있고 한 그룹만이 공원에 나와 있다는 설명과 함께 관리인이 먹이를 여기저기 뿌려놓고 그 행동을 관찰하게 함으로서 원숭이 세계의 서열과 어떻게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싸우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인간세계보다 나은 듯... 시간이 없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일본 최고의 온천마을 벳부로 향했다.

 

특급 스기노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산 중턱에 있는 노천온천 타나유에서 벳부시내를 내려다 보며 온천욕을 즐기고 70여가지의 뷔페식으로 성대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카라오케에 가서 목청도 돋아보고, 시내에 있는 빠찡코에 내려가 구슬도 처보고 친구들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만끽했다.

 

11월 7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마지막 온천욕을 즐기고, 뷔페식으로 아침을 끝낸 다음, 뱃부 지옥순례의 백미 카마도지옥으로 향했다. 온천지대의 숨구멍에서 솟구치는 수증기 위에 대형 솟을 걸어놓고 밥을 지어 먹었다 하여 가마도 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온천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진기한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속에서 봐왔던 지옥을 연상케 하는데 그래서 가마도 지옥이라 하나보다. 온센타마고도 먹고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온천물에 족욕도 하며 남자들의 수다는 계속 되었다.

 

후쿠오카로 돌아와 생선초밥으로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 2시15분 다시 코비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부산항에 들어올 즈음 오랫만에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부산국제여객터미날에 5시 10분에 도착, 자갈치시장에 가서 생선회와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광주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했고,우리는 저녁8시에 출발하는 KTX로 서울에 올라왔다. 10시 40분경 서울역에 도착, 플랫폼에서 빙둘러 서서 즐거운 수학여행이었다는 주재현 친구의 작별인사와 박수로 모든 공식행사를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헤어짐을 아쉬운 듯 두손을 붓들고 수다를 떨다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좋은 호텔, 좋은 음식에,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있는 관광. 온갖 호사를 누리며 다녀온 수학여행, 남자들도 수다스럽다는 것을 느낀 여행이었다. 내년에도 다시 가잔다. 테마는 회갑여행이라나? 난 금년 7월이 회갑이었는데 어쩌지? 아무말 말고 그냥 따라 오면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