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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광주 봉쇄가 풀리고 우린 선을 보았다. 두 번째 양가가 모여 식사를 하고 세 번째 사진관에서 약혼사진을 찍고 네 번째 결혼날을 정하고 폐물을 맡기고 다섯번째 만남이 1980년 9월14일 예식장에서 였다.

선도 선도 지긋지긋하게 보았다. 대충 세어보아도 140번은 넘은 것 같다. 1978년 1월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거의 매주 광주에 내려가 선을 보았다. 심지어 같은 신부감을 매파가 달라 두 번 본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셋째 누나집 2층에 세들어 사는 새댁(처형)의 동생이 서울에서 잠시 내려 왔는데 언뜻 보기에 참한 것 같으니 한번 선을 보라는 전화가 셋째 누나로 부터 있었다. 그래서 약속을 하고 토요일 오후 광주에 가기 위해 경주 고속버스 터미날에 가보니 광주고속 사정에 의하여 광주행은 무기한 운행을 정지한다는 방이 붙어 있었다. 대구로 갔다. 대구고속버스테미날에도 같은 내용이 게시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부산에 있는 친구를 만나 사정을 알아보니 국내 방송에는 나오지 않지만 부산에서는 잡히는 일본 NHK 뉴스에 의하면 광주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우리 국군에 의해서 광주가 봉쇄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 6월 광주 봉쇄가 풀리고 우린 선을 보았다. 두 번째 양가가 모여 식사를 하고 세 번째 사진관에서 약혼사진을 찍고 네 번째 결혼날을 정하고 폐물을 맡기고 다섯번째 만남이 1980년 9월14일 예식장에서 였다.

 

이렇게 하여 노총각은 구제되고 23살의 어린 신부와 함께 우리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시작되었고 1981년 8월11일 아빠 엄마를 쏙 빼닮은 사랑스런 딸 경현이가 태어났으며,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다.

 

열렬한 사랑끝에 태어난 딸이어서 그런지 엄마 아빠의 장점만을 쏙 빼어 닮아 총명함과 끈기, 미모를 두루 갖춘 어였한 숙녀로 성장하였고 결혼 25주년을 맞이한 2005년 기족사진도 촬영하였고, 2010년 7월 7일은 나의 회갑날이고 9월 14일은 결혼 30주년을 맞는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기념일을 맞을 것이다.